메리츠화재 강남 사옥. /메리츠화재 제공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이 지난 14일 콘퍼런스 콜에서 일부 보험사가 예상손해율을 낙관적으로 설정해 이익을 부풀렸다고 공개 비판하면서 보험업계가 들썩였습니다. 김 부회장은 “회사 간 실적손해율은 유사한데, 예상손해율 추세는 완전히 반대인 경우가 확인된다”며 “이런 비합리적 추정을 통해 이익은 당기에 실현하고 손실은 미래 세대에 떠넘기고 있다”라고 말했죠.

보험업계에서는 당장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이야기부터 “메리츠화재가 이참에 금융감독원 역할도 해야 할 것 같다”라는 냉소까지 나왔습니다. 지적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김 부회장 주장에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진위를 따지기 위해서는 논란의 중심인 예상손해율을 이해해야 합니다. 손해율은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와 지급한 보험금의 비율을 뜻합니다. 보험료로 100만원을 받고 보험금으로 70만원을 지급했다면 손해율은 70%가 됩니다. 보험사가 가져가는 이익은 30만원이죠.

문제는 보험사가 보험금을 얼마나 지급해야 하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미래에 갑자기 전염병이 유행해 병원을 찾는 고객이 많아지면 보험금을 왕창 지급해야 하지만, 고객이 건강하면 지급할 보험금은 적어지죠. 보험사는 과거 5년 치 통계를 기반으로 미래에 지출할 보험금 규모를 예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예측과 가정을 토대로 산정되는 것이 예상손해율입니다.

예상손해율은 말 그대로 예상입니다. 보험사가 실제 지급한 보험금은 예상치보다 적거나 많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상치(예상손해율)와 실제(실적손해율)의 차이를 예실차라고 합니다.

논란의 핵심은 보험사가 예상손해율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실적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김 부회장은 일부 보험사가 예상손해율을 의도적으로 낮게 설정해 이익을 부풀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상손해율을 낮게 설정하면, 부채(최선추정부채)가 줄고 미래 수익성 지표인 계약서비스마진(CSM)은 증가합니다.

메리츠화재는 예상손해율을 높게 설정했다고 밝혔습니다. CSM을 포기하고서라도 미처 예상치 못한 미래의 리스크를 최대한 현재에 반영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김중현 메리츠화재 대표는 예상손해율이 1%포인트 증가하면 CSM이 7000억원 줄어든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 /조선DB

하지만 보험업계에서는 김 부회장 주장이 과하다고 평가합니다. 예상손해율을 낮게 설정하면 CSM이 증가하는 것은 맞지만 자칫 예실차가 마이너스가 될 수 있습니다. 예상했던 보험금 지급액이 100만원이었는데, 실제 120만원을 지출하게 되면 보험손익·영업이익 등 당기순이익이 줄어듭니다. 순이익이 줄어들 위험성까지 감수하며 예상손해율을 낮게 설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반면 메리츠화재처럼 예상손해율을 높게 설정하면, 미래 수익인 CSM은 감소해도 당기순이익은 증가합니다.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다른 수익성 지표도 상승하는 데다 배당도 수월해지죠. 오히려 메리츠화재가 예상손해율을 보수적으로 설정해 막대한 이익을 실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메리츠화재의 예실차 이익은 1699억원으로 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약 10%였습니다.

메리츠화재가 예상손해율을 높게 설정했다는 것은 결국 고객에게 보험료를 비싸게 받았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예상손해율은 앞으로 지급할 보험금이 많다고 가정한 것이기 때문에 수지를 맞추려면 보험료를 더 많이 받아야 합니다.

보험업계에서는 예상손해율을 낮게 설정하든 높게 설정하든 의도를 반영해 산정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예상손해율이라는 말 그대로 미래 지급할 보험금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본질인 것이죠. 변인철 삼성생명 상무는 지난 16일 콘퍼런스 콜에서 메리츠화재처럼 예실차를 보수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회계 제도의 취지와 다르다고 했죠. 학계에서도 “예실차를 최소화하는 것이 맞다”라고 판단합니다.

결국 이 논란은 금감원이 개입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해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금감원은 각 보험사의 예상손해율 산정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부회장이 예상손해율을 논란거리로 만들면서 금융 당국이 개입할 명분을 제공하게 된 것이죠. 자율성을 달라고 외쳐왔던 보험업계가 스스로 발목을 잡은 꼴입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매번 이슈가 생길 때마다 금융 당국이 나서면 업계의 자생력만 떨어지는 것이다”라며 “일정 수준의 가이드라인은 필요하지만 업계가 자체적으로 합의해 자율 규제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