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기업인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환불 지연’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진 가운데, 지난해 7월 25일 서울 삼성동 위메프 본사에 피해자 수백 명이 해결책을 요구하며 몰려온 모습. /조선DB

금융감독원이 전자지급결제대행(PG)업체의 정산대금 60% 이상을 외부 기관에 별도 관리하도록 자율 규제를 만든다. 지난해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이후 관련 법 개정이 늦어지자 자율 규제부터 마련해 관리·감독 기준점을 잡겠다는 취지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PG업체의 정산대금 60% 이상을 별도 관리해야 한다는 내용의 자율 규제 초안을 PG업계에 공유했다. 자율 규제엔 PG사의 전체 정산 대금 중 최소 60%를 예치·신탁·지급보증보험 등의 방법으로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의무가 담겼다. 이 자율 규제가 시행되면 은행 혹은 보험사가 PG사의 정산 대금 절반 이상을 관리하게 되므로 정산 대금 유용 가능성이 줄어든다.

금감원은 초안에 대한 PG업계의 의견 수렴을 마쳤으며, 이를 토대로 자율 규제 최종안 내용과 발표 시기를 조율하는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율 규제 및 행정 지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PG사들이 무리하지 않는 수준에서 소비자·소상공인 보호 방안을 마련하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정산 대금은 PG사가 잠시 보유하는 돈이다. 소비자가 온라인상에서 어떠한 물건을 구매하고 결제하면, 이 금액이 결제처로 곧바로 넘어가지 않는다. 결제 서비스를 대행하는 PG사가 적게는 2~3일, 길게는 한 달 이상 돈을 보유했다가 수수료를 뗀 뒤 결제처로 넘긴다. PG사는 정해진 정산 기한 내에 대금을 결제처로 넘겨야 한다.

지난해 8월 6일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왼쪽)와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티몬·위메프 사태 관련 당정협의회에 참석했다. 이날 당정협의회 이후 금융위원회는 PG사의 정산대금 100%를 별도 관리하는 내용의 법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31일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관련 내용을 담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뉴스1

금감원이 정산 대금 관련 자율 규제를 만든 이유는 지난해 티메프 사태가 정산 대금 미지급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티몬과 위메프는 이커머스(전자상거래)와 PG업을 겸했다. 두 업체는 수년간 자본 잠식 상태였는데, 입점 업체에 줘야 할 정산 대금을 유용하며 사업을 존속시켰다. 이때까지 정산 대금 관리를 따로 규율한 제도는 없었다. 이 때문에 PG사가 정산 대금을 함부로 쓰더라도, 합법적인 용도 내에 사용하다 정산 기한에 맞춰 결제처에 지급한다면 문제 삼지 못했다. 티몬과 위메프는 이러한 방식으로 부실 사업체를 연명하다 지난해 1조3000억원가량의 정산 지연을 일으켰다.

티메프 사태가 터지고 여당과 금융위원회는 정산 대금 지연 재발을 막기 위한 법 개정에 착수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강민국 의원은 PG사가 정산 대금 전액을 외부 기관에 별도 관리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담아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전금법 개정과 온라인플랫폼법 제정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버티는 데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등의 여파로 전금법 개정안은 반년 넘게 정무위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전금법 개정안이 당장 통과되더라도 실제 시행까지 1년의 유예 기간이 있다.

금감원은 제도 공백 기간에 PG사들의 정산 대금 유용과 추가적인 금융 사고를 막고자 자율 규제를 마련했다. 자율 규제와 행정 지도는 법적인 구속력은 없으나, 금감원의 감독·검사 업무 기준점이 된다. PG사 입장에서도 사실상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아울러 금감원은 신탁 혹은 지급보증보험 가입에 드는 비용을 고려해, 정산 대금 별도 관리 수준을 100%가 아닌 60% 수준으로 정했다. 소형 PG사들의 비용 부담을 고려한 연착륙 조치다.

PG업계도 금감원의 자율 규제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비용 부담이 일부 생기겠지만, 티메프 사태 이후 떨어진 PG업계의 신뢰도를 회복하는 게 우선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