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박민수 덕의초 교사가 경제금융 수업에 사용하는 보드게임 '리치 로드'를 왼손에, 모의 통장을 오른손에 들어보이고 있다. 박 교사는 서울초등경제금융교육연구회장으로 회원들과 함께 경제금융교육용 보드게임 '리치 로드'를 직접 개발했다. /김태호 기자

지난 9일 방문한 서울 구로구 덕의초등학교 6학년 4반 교실은 ‘주식 투자 레이스’가 한창이었다. 교실 안 학생 19명은 왼손에 학급경제신문을, 오른손엔 투자 포트폴리오 작성지를 들고 고민에 빠졌다. 이날 게임의 배경은 1960년대 한국. 신문엔 ‘경공업, 새로운 전략이 되다’ ‘삼백산업 이대로 무너지나’ 등의 제목이 달린 기사가 눈에 띄었다. 학생들은 신문 기사를 바탕으로 섬유, 식품, 정유 등 업종이 다른 8개 기업에 모의 화폐를 얼마씩 넣을지 고르고 있었다.

“인생은 한 방이지!” 짓궂은 목소리로 한 종목에 집중 투자하려는 학생이 보이자 선생님의 따끔한 잔소리가 날아온다. “여러분,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으면 안 돼요. 자칫하면 몽땅 깨지는 수가 있어요.” 평범한 교실을 주식 투자 체험 공간으로 만든 이는 박민수(35) 교사. 이날 이뤄진 주식 투자 레이스는 박 교사가 개발에 참여한 학습법이다. 우리나라의 시대별 경제 발전을 가르치며 주식 투자를 간접 체험하게 하는 점이 특징이다. 당대 산업 발전 양상을 반영해 기업의 주가가 오르내리도록 설계돼 있으며, 학생들은 교과서에 나온 정보를 바탕으로 직접 투자 종목을 고른다.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일찌감치 ‘공부 후 투자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주식 투자 레이스의 교육 목표다.

지난 9일 서울 구로구 덕의초등학교 6학년 4반 교실에서 한 학생이 경제금융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김태호 기자

박 교사는 2017년 처음 교편을 잡은 8년 차 초등 교사다. 그는 2019년부터 6년째 학급에서 금융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계기는 단순했다. 박 교사는 “2019년 당시 학급생 25명 중에 5명이 장래 희망을 건물주로 썼다”며 “아이들이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데, 정작 돈을 모으는 방법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박 교사는 “급여, 저축, 투자 등의 개념을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며 “심지어 한 번은 학생들에게 은행 방문 경험을 물어봤는데, 절반가량은 은행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의 상담은 박 교사의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했다. 그는 어린 시절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꿈꿨지만, 교사였던 외할아버지의 권유로 교대에 입학했다. 교대 진학 후 학군단에 지원하고 교단에 오르기까지, 다소 경제 원리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 박 교사는 “장교 복무 전까지 금융이라곤 은행 저축이 전부인 줄 알았고, 부동산 계약할 때 계약금을 10%나 줘야 한다는 사실도 몰랐다”며 “한때 CEO가 되기를 꿈꿨지만, 성인이 되고도 금융 문맹이었던 내가 떠올랐다”고 전했다. 이후 박 교사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만이라도 금융 교육을 접하도록 해 나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듬해 박 교사는 뜻이 맞는 동료 교사와 서울초등경제금융교육연구회를 창립했다. 2명이 시작한 연구회는 현재 65명 회원을 보유한 단체로 성장했다. 박 교사는 지난해부터 이 연구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연구회는 단순히 금융 교육 이론을 따지는 모임에 그치지 않고 교실에서 활용 가능한 학습법을 개발했다. 주식 투자 레이스 역시 연구회 회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체험형 학습이다. 현재 연구회는 주식 투자 레이스 자료를 초등 교사 온라인 커뮤니티인 인디스쿨 등에 무료로 공개하며 금융 교육 전파에 힘쓰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구로구 덕의초등학교 6학년 4반 교실에서 박민수 교사가 학생들에게 경제금융 수업을 하고 있다. /김태호 기자

이외에도 박 교사는 연구회 회원들과 지난해 보드게임 ‘리치 로드’를 개발했다. 리치 로드는 투자와 소비를 반복하며 돈을 모으고 행복 점수를 따내는 게임이다. 가장 먼저 자산 소득이 총지출을 뛰어넘고 행복 목표를 이뤄내는 참가자가 게임에서 승리한다. 게임 디자인부터 제작 업체 선정까지, 박 교사와 연구회 회원들은 1년 가까이 근무 외 시간과 사비를 써가며 게임 제작에 매달렸다. 박 교사는 “학교에서 체험형 교구로도 쓸 수 있고 가정에서도 부모가 자녀들에게 금융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초등학생이 금융을 배우기엔 이르지 않느냐는 질문에 박 교사는 “오히려 이때가 적기”라고 답했다. 그는 “중고등학교 현장은 어쩔 수 없이 입시 위주 교육으로 돌아간다”며 “초등학교에서는 입시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교육을 시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경제를 너무 딱딱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돈이 움직이는 원리를 체험하고 올바른 경제관념을 갖도록 하는 게 금융 교육의 목표다”라고 덧붙였다.

박 교사는 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학교 밖에서도 금융 교육을 펼칠 예정이다. 그의 올해 버킷리스트 1번은 교육 봉사. 박 교사는 “금융 교육을 6년 가까이 하다 보니 이 교육이 가장 필요한 이들은 경제 취약 계층에 속한 아이들이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이어 “경제 취약 계층 아이들이 금융 교육을 받아야 올바른 소비 습관을 지니고 사기 피해도 입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상반기 중 연구회 차원에서 아동 복지 시설에 첫 봉사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라며 “교육자로서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