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도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화두로 떠올랐다. 도매상인들 사이에서 무역 대금을 스테이블코인으로 지불하고, 해외에 주재하는 개발자들에게 급여를 스테이블코인으로 지급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국부 유출을 경계하며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와 원화 가치에 기반한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만들어야 국부 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다음 날 더불어민주당 미래경제성장전략위원회(경제성장위)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과 기대 효과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반면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과거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실패 사례인 ‘테라·루나 사태’를 언급하며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이후 민병덕 민주당 의원, 김병욱 전 민주당 의원까지 재반박에 가세하며 공방이 격화했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적도록 설계된 가상자산이다. 달러나 금 등 특정 자산과 1대1로 연동돼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설계돼 있다. 달러에 가치를 고정한 USDT(테더)나 USDC가 대표적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 시장의 가격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아 지급 수단이나 금융 서비스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실제 활용 사례도 등장하고 있는데, 해외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결제하거나 급여를 지급하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스테이블코인이 자본 유출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홍콩에 본사를 두고 있는 리닷페이가 대표적이다. 리닷페이는 스테이블코인이나 비트코인, 이더리움 같은 가상자산을 예치하면 전 세계 어디서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리닷페이는 애플페이나 구글페이 등과 연동이 가능하며, 실물 카드를 발급하면 비자(VISA)카드 결제망을 이용해 국내 대형 마트부터 소매점까지 다양한 곳에서 결제할 수 있다.
남대문 등지에서는 무역 대금을 스테이블 코인으로 받는 외국 상인이 늘고 있다. 금융 인프라가 미흡한 국가의 상인들은 지금껏 현금으로 무역 대금을 받아왔지만, 취급과 관리가 간편한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 실제로 강남과 남대문, 명동 등지에는 스테이블코인을 취급한다는 환전 업소나 현금을 테더로 바꿔주는 불법 환전 업자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국내에서 스테이블코인의 활용도가 늘어날수록 원화의 주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해시드오픈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업비트와 빗썸에 상장된 테더(USDT)의 주간 거래량은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를 돌파하면서 비트코인 다음으로 높은 거래량을 기록했다. 또한 가상자산을 통한 해외 자본 유출 규모가 2022년 하반기 21조6000억원에서 2024년 상반기 74조800억원으로 급증했다. 해시드오픈리서치 측은 “스테이블코인의 영향력이 확장되면서 실물 경제로의 도입이 늘어날수록 통제가 어렵고 국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원화에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우려를 인지한 정부도 현재 외국환거래법에 가상자산과 가상자산 사업자에 관한 정의 조항을 신설하는 방향으로 법안 개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환거래법에 가상자산이 정의되면 거래소 등 사업자가 국경 간 가상자산 거래를 취급하기 위해 사전에 등록하고 거래 내역을 보고하게 된다. 또한 거래 목적별 한도를 정하거나 수신인을 제한하게 될 수도 있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규제의 틀은 마련되지 못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의 정의와 규제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현정환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테더 같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영향력이 강해지면 우리 통화인 원화가 잠식될 수 있는데, 이미 캄보디아처럼 자국 통화가 약한 국가들은 잠식당한 상태다”라며 “스테이블코인 거래에 대한 규제 체계와 감독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해외에서는 24시간 거래 및 실시간 검증 등 블록체인 거래에 대한 경제적 효용을 인식하고, 이미 블랙록의 비들(BUIDL) 등 은행망을 대신할 수 있을 정도의 지급결제시스템을 구축했다”며 “국내에서도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많은데 우리는 정의도 규제 수단도 논의가 더딘 편이라 속도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