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 신용자를 위한 긴급 대출인 특례 보증이 올해 4개월 만에 1000억원 이상 집행됐다. 최근 민간 금융사들이 대출을 옥죄면서 최저 신용자들의 급전 수요가 해당 상품에 쏠린 탓이다. 특례 보증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 가운데 대출금 회수는 어려운 상황이 반복돼 내년엔 1000억원 넘는 정부 예산이 대출 손실을 메우는 데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례 보증에 쓰인 예산은 사실상 회수 불가능한 돈인 만큼,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2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4월까지 최저신용자 특례보증 신규 보증 금액은 1070억원 집행됐다. 이 기간 이뤄진 신규 보증 건수는 3만638건이다. 지난해 신규 보증 금액이 1935억원임을 고려하면 지난해 실적의 절반 이상이 올해 4개월 만에 집행된 셈이다. 지금 속도라면 올해 최저신용자 특례보증은 3000억원 이상 공급될 것으로 관측된다. 최저신용자 특례보증은 신용점수 하위 10% 이하에 연 소득 4500만원 이하인 최저신용자를 대상으로 취급하는 정책 대출 상품이다. 대출금 전액을 정부가 보증해 최저신용자들의 급전 숨구멍 노릇을 한다.
최근 최저신용자 특례보증 수요가 늘어난 이유는 금융권 대출 문턱 상향에 따른 결과다. 은행은 가계 대출 증가 폭 관리를 이유로,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 2금융권은 건전성 관리를 이유로 신용 대출을 까다롭게 취급하고 있다. 금융사는 저신용자 대상 대출부터 옥죄기 시작했고, 최저신용자들은 정부 보증을 받아서라도 긴급하게 돈을 빌리고자 특례보증을 찾게 된 것이다.
특례보증 사업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도 해마다 뛰고 있다. 문제는 이 돈이 최저신용자들의 빚을 대신 갚아주는 용도로 쓰인다는 점이다. 2023년 280억원으로 배정받았던 예산은 지난해 560억원, 올해는 추경안까지 포함해 925억원으로 늘어났다. 예산 규모를 좌우하는 변수는 예상사업손실률이다. 예상사업손실률은 대위변제율에서 구상채권회수율과 보증료 수입을 제외한 수치다. 차주(돈 빌리는 사람)가 특례보증으로 돈을 빌린 후 갚지 않으면 정부가 돈을 대신 갚아야 하는데 이것이 대위변제다. 정부가 돈을 대신 갚은 후 채무자에게 돈을 상환하라고 요구하는 과정이 구상채권회수다.
특례보증의 기본 재원은 각 금융사의 자금이다. 전체 대출금 중 끝내 상환되지 않은 비율이 예상 사업 손실률이고, 이것이 곧 정부 예산을 산출하는 식이다. 예상 사업 손실률이 증가하면 대출금 회수를 못해 정부가 쓰는 돈이 늘어나 예산 증가로 이어진다. 금융위는 예상 사업 손실률을 지난해 20.6%에서 올해 33.0%로 올렸다. 두 해의 특례보증 목표 공급액은 2800억원으로 같지만, 대위변제율이 지난해 40.0%에서 올해 53.5%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내년도 보증액 목표치와 예상 사업 손실률이 함께 증가한다면, 대출 손실을 메꾸는 정부 예산은 1000억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취약층 대출 명목으로 1000억원 예산이 투입하지만, 사실상 최저 신용자들에게 현금 지원처럼 살포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저신용자 대상 금융 지원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예산 낭비를 줄일 방법도 같이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신용자 특례 보증은 엄연한 대출 상품이기에 채무 상환이 전제돼야 한다”며 “정책 금융기관의 판단 아래 대출금을 갚을 여력이 전혀 없는 취약층은 특례 보증이 아닌 다른 복지 혜택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한 정책 금융 기관이 차주들에게 채무 상환의 중요성을 알려 ‘정책 대출은 갚지 않아도 되는 돈’이라는 도덕적 해이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