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오는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은행권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사회적 환원 압박은 거셀 것이란 우려 때문인데요. 문재인 정권 땐 ‘포용금융’, 현 정권에선 ‘상생금융’으로 달리 불렸으나, 결국 핵심은 이자장사로 쉽게 번 돈을 금융 지원의 형태로 사회에 환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치권의 호출은 잦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은행장들을 소집한 데 이어, 이번엔 국민의힘이 은행장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 정무위원들은 9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현장 간담회를 열고 미국의 관세 부과로 타격이 우려되는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자영업자 금융 지원을 당부했습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은 “이달 중 소상공인 금융 지원책을 발표하겠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소상공인·자영업자 25만명에 매년 7000억원씩, 3년간 2조원을 지원하기로 한 ‘상생금융 시즌2′를 발표한 지 3개월 만에 ‘번외편’까지 더해지자, 은행들은 난색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의 요구대로 성실하게 사회 공헌을 해왔는데, 은행권을 향한 고통 분담 요구는 점점 더 늘고 있다”며 “정치권의 동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윤한홍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앞줄 오른쪽 두 번째)을 비롯한 국민의힘 정무위 위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민생 경제 및 은행권 경쟁력 제고를 위한 국민의힘-은행권 현장 간담회' 시작에 앞서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앞줄 오른쪽 세 번째) 및 5대 시중은행장 등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뉴스1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아직 대선 후보 경선도 치르지 않았지만, 은행들은 여야가 만들고 있는 금융 공약에 대한 정보 수집에 여념이 없는 상황입니다. 비상계엄 후 국회의 입법 기능이 마비되는 통에 개점휴업 상태였던 은행 대관 업무 담당자들도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정책이 변하면 기업 입장에선 기민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은행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지만, 가산금리 산정 기준 공개 등 규제 수위를 높이기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포착돼 더욱 귀를 기울이는 모습입니다.

은행이 정치권의 주 표적이 되는 것은 경기 침체와 미국의 관세 부과 등의 여파에도 거의 유일하게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어섭니다. 은행들은 그간 고금리에 힘입어 예대마진(예금과 대출 금리 차에 따른 수익)을 늘려 역대급 실적을 내고 있습니다. 국내 4대 금융지주의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 추정치는 4조8759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주력 산업마저 휘청이는 어려운 상황에서 당장 손을 벌릴 수 있는 곳이 은행뿐이다”라며 “여야 모두 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늘리는 내용의 공약을 다수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지난 대선 땐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가 ‘기본대출’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은행 예대금리차 공시’를 주요 금융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대선 레이스가 이제 막 시작돼 어떤 후보가 어떤 공약을 들고나올지 알 수 없으나, 이번에도 은행이 직면하게될 상황이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