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현재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은행법 개정안 등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출금리 산정체계 공시와 상생 프로그램 등 대부분 금융권을 향한 압박 내용이 주를 이루면서 은행권에는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현 정부가 추진했던 금융정책은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커졌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이 가장 우려하는 법안은 은행이 대출금리에 예금자보호법상 보험료와 법정 출연금 등을 반영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민병덕 의원발 은행법 개정안이다. 은행의 대출이자에는 신용보증기금법, 한국주택금융공사법, 기술보증기금법 등에 따른 각종 법정 출연금, 예금 비용에 해당하는 지급준비금 및 예금자보호법에 따른 보험료가 포함되는데, 이런 비용 부담을 금융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금지한 항목들을 대출금리에 반영한 은행 임직원을 1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의 제재를 받도록 처벌 규정도 마련됐다. 은행권은 최근 은행연합회를 통해 민병덕 의원 측에 내용은 수용하되 법적 처벌 대신 은행법에 따라 금융 당국 제재를 받는 형식으로 변경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은행 대출금리 산정체계 공시제도 법제화도 부담이다. 해당 개정안은 가산금리를 결정하는 세부항목 등 구체적인 대출금리 산정 체계를 주기적으로 공시하도록 하고 은행이 합리적으로 대출금리를 산정하도록 금융위원회가 개선을 권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은행의 가산금리 책정은 각 은행들의 자금 조달 방식과 비용 절감 노하우 등 영업기밀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한 시증은행 관계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금융권이 시장 안정 역할까지 떠안은 상황에서 이 같은 법안들이 추진되면 은행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이미 2조원이 넘는 상생 프로그램이 윤 정부 동안 추진됐는데, 앞으로 압박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중”이라고 말했다.
반면 현 정부가 추진했던 금융정책은 표류할 전망이다. 대표적으로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지난해 12월 계엄과 탄핵 정국 이후 사실상 추진이 중단됐다. 당국이 가계부채 문제 해결방안으로 내놓은 ‘지분형 모기지(주택담보대출)’도 6월 로드맵이 공개될 예정이었는데, 도입 추진에도 동력이 크지 않은 상황에 조기 대선 정국까지 겹치면서 표류할 가능성이 커졌다. 제4인터넷전문은행 선정 역시 6월 중 인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었지만, 인터넷은행 업계에서도 “끝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회의론이 돌고 있다.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금융 당국은 차질 없는 금융정책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전날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복현 금감원장, 5대(KB·신한·하나·우리·NH농협) 금융지주 회장, 정책금융·유관기관장 및 금융협회장들과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기존에 발표했거나 추진 중인 정책들은 계획과 일정대로 차질 없이 추진해 시장 신뢰를 확고히 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 이후 금융위 직원들에게는 “금융정책을 담당하는 공직자로서 국정에 공백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맡은 바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