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상호관세 부과 방침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정부의 25% 상호관세 방침 발표 후 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 관리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미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이 늘어나는 중에 기업들의 경영 악재까지 겹치며 대출 자산 건전성 관리에 비상등이 켜진 상태다. 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 연체가 급격히 증가하지 않도록 예의주시하면서도 채무조정 등을 통해 시장 지원 및 건전성 관리라는 ‘두 마리 토끼 사냥’에 나설 계획이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은행들은 미국 정부의 상호관세 부과 발표 전후로 중소기업 대출 건전성 관리 방안을 모색 중이다. KB국민은행은 관세 부과가 미칠 영향을 고·중·저위험 3단계로 구분한 뒤 개별 산업군 위험 수준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또한 관세율 협상 결과를 올해 상반기 정기 산업등급평가에 반영할 예정이다. 산업등급평가는 각 은행이 산업군의 우량 수준 혹은 부실 위험도 등을 평가해 매기는 등급을 뜻한다. 은행들은 이 등급을 여신심사업무 등에 활용한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상호관세 부과 발표 후 비상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SC제일은행은 현재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 현황을 파악 중이며 관련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다.

미국발(發) 상호관세 충격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고율 관세는 대미 수출품의 가격을 올려 현지 내 상품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수출품 경쟁력이 약해지면 수출기업뿐만 아니라 중소 협력업체(벤더)들도 생산 저하 및 경영 악화에 빠지기 십상이다. 사업 경영이 나빠지면 당장 대출 상환 능력이 떨어진다. 반면 금전 융통을 위한 대출 수요는 더욱 커진다. 중소기업대출 중 연체 및 부실 규모가 늘어나기 쉬운 환경이다.

그래픽=손민균

게다가 이번 상호관세 발표 전부터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은행들의 중소법인대출 연체율은 0.81%를 기록했다. 이는 금감원이 처음 중소법인대출 연체율 통계를 공개한 2020년 1월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중소법인대출 연체율은 중소기업 중 개인사업자를 제외한 법인 사업자들의 연체율을 따로 집계한 수치다. 은행 입장에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소기업대출 건전성 관리 방안을 급히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은행들은 만기 연장과 이자 감면 등의 카드를 고민하고 있다. 은행의 대출 사업은 시장에 돈을 돌게 한다는 공공적인 순기능을 띤다. 이 때문에 경제가 어려울수록 시장과 금융 당국은 은행을 향해 자금 공급 요구 목소리를 키운다. 은행은 이 목소리를 외면한 채 마냥 대출 문턱만 올릴 수 없는 노릇이다. 이때 은행이 만기 연장 및 이자 감면을 시행하면 중소기업의 돈줄을 끊지 않는다는 명분을 챙길 수 있다. 동시에 은행은 연체 발생을 순연시켜 장부상 연체율이 상승하지 않는 실리도 얻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상호관세 여파를 예의주시해야 하되, 은행들의 건전성을 크게 위협할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레나 곽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상호관세는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 타격을 입혀 은행들의 건전성 리스크를 증가시킨다”고 분석했다. 곽 선임연구원은 “한국의 대형 은행들은 이미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마련했기에 건전성 악화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한편 금융권 일각에선 은행 돈을 푸는 게 만능 해결법은 아니라는 견해도 나온다. 시장 내에서 이뤄지는 옥석 가리기에 따라 한정된 돈을 한정된 기업에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 유행 때도 정부와 은행이 돈을 마구잡이로 풀어 한계 기업을 좀비 기업으로 만들었다”며 “역량 있는 기업엔 지원을 아끼지 않되 무리하게 한계 기업에 돈을 푸는 현상은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