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환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가 지난 3일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인원 기자

미정산액 1조2790억원, 피해기업 4만8124개. 지난해 7월 금융업계를 덮친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또 유사한 구조의 ‘발란 사태’가 발생했다. 명품 유통이커머스(전자상거래) 1위 업체 발란은 지난 1일 기업회생을 신청했으며 정산받지 못한 판매자(셀러)들은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티메프 사태 전 2021년에는 ‘머지포인트 사태’가 있었다. 비슷한 구조의 미정산 사태가 5년 사이에 세 차례나 발생한 것이다.

국내외 지급서비스를 오랫동안 연구한 현정환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정산 사태가 반복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명백한 ‘시장 실패’라고 지적했다. 현 교수는 “판매대금은 이커머스 플랫폼과는 무관하므로 플랫폼이 이를 통제하거나 이용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돼야 한다”며 “판매대금은 선불금 관리에 준하게 엄격하게 관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급서비스를 규제하는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은 2007년 첫 제정 후 별다른 개정이 없었다. 제정 당시 별볼일 없었던 이커머스 산업은 2010년대 빠르게 성장하면서 지금은 이커머스 매출이 유통 전체 매출의 절반 수준에 이른다. 제정 당시만 해도 지급서비스는 은행 등 예금수취기관의 영역이었으나, 디지털 금융 및 비대면 거래 증가에 따라 비은행 기업과 이커머스 업체들이 지급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추세를 반영하지 못한 규제와 감독체제가 지금의 반복되는 상황을 낳았다. 지난 3일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 연구실에서 현 교수를 만났다. 현 교수는 전금법의 적절한 개정과 전자결제대행(PG)사에 대한 감독 강화가 이커머스 미정산 사태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현 교수와 일문일답.

─반복되는 이커머스 미정산 사태의 원인은.

“화폐는 부채다. 예컨대 예금은 예금자 입장에서는 자산이지만, 이를 발행한 은행 입장에서는 부채다. 우리가 현금을 은행에 예치하고 이를 기반으로 카드를 사용하거나 송금이체하는 것은 예금이 화폐이기 때문이다. 은행은 화폐를 관리하므로 강력한 관리감독 하에 있고, 예금자보호법 등의 규제도 받는다. 이커머스의 판매대금 역시 부채면서, 화폐에 준한다. 판매자에게 지급해야 할 부채인 예금이나 다름 없기에 규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행법상 대금에 대한 관리감독 체계가 미흡하기 때문에, 이커머스 업체들이 지급결제를 위해 미리 지불한 고객의 자금을 보호하지 못했다.”

─이커머스 업체가 고객 자금 보호에 소홀할 수 있었던 것은 규제 체계의 미비인가.

“현 전금법의 한계다. 전금법은 2007년 1월 시행됐다. 전금법은 도입 이래 라이선스 체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데, 2010년 이후 핀테크와 빅테크 등 비금융 기업의 지급서비스시장 진출이 이뤄졌는데도 이런 변화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국내에서는 핀테크 업체가 전자화폐업자나 전자자금이체업자의 자격이 없어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또 티메프나 발란 같은 대규모 유통업자가 정산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PG가 아니므로 전금법에 따른 규제를 받지 않고, 개정안에서도 판매대금의 50%만 별도 예치하고 관리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런 제도 하에서 미정산 사태가 반복되는 것은 당연하다.”

─현 전금법에서 당장 개선해야 할 점을 꼽는다면.

“1·2차 PG사에 대한 구분과 별개 규제다. 금융감독 측면에서 서로 다른 행위에 대해 ‘동일 행위-동일 위험-동일 규제’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의미다. 현행법은 1차 2차 PG사에 대한 구분이 없고 금융업계 종사자들 중에서도 구분을 잘 못하는 사람이 있다. 1차 PG사는 단순 결제 대행만을 제공한다. 2차 PG사는 판매자금에 대한 정산 서비스를 제공한다. 1차 PG사는 결제데이터가 지나가는 통로고, 카드 같은 금융사들도 결제지연이나 오류 방지를 위해 여러 1차 PG를 사용한다. 이렇듯 1차 PG사가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한 반면 2차 PG사는 자금 관리라는 중책을 담당한다. 이렇듯 서비스 행위 자체가 다르고 유발하는 리스크가 다르므로 별도의 규제가 적용돼야 한다.”

현정환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가 지난 3일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인원 기자

─이 부분 하나만으로도 당장 반복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

“PG사에 대한 구분과 판매자금 별도예치 의무가 도입되면 티메프와 유사한 사태는 대부분 막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를 논의가 더 필요한데, 먼저 별도 예치의 방식이다. 신탁이나 지급보증보험으로 별도 관리하는 경우 운용손실이 낮은 자산으로 운용되도록 하고 보험보장한도가 예치금보다 높아야 한다.

두 번째로 별도예치의무를 갖는 선불업자 또는 이커머스 플랫폼의 범위다. 지난해 개정된 전금법은 영세 사업자까지 감독 대상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선불전자지급수단의 발행잔액 30억원 및 연간 총발행액이 500억원 미만인 경우 등록의무를 면제한다. 영세사업자를 등록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등록 자체를 전적으로 업체에 맡겨두기보다 등록사유 발생 가능성이 큰 기업을 미리 모니터링하고 등록절차를 안내하는 제도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금법 개정이 시급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은 전금법을 넘어 지급서비스 전체를 포괄하는 법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현행법은 전자금융을 규제범위로 두고 있어 동일 서비스라도 전자방식으로 제공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규제가 달라질 가능성(규제 차익)이 존재한다. 최근 문제가 된 ‘문화상품권’이 온라인 상품권만 당국의 규제 이슈가 있고 지류 상품권에 대해서는 규제 문제가 없다는 게 현행법 때문이다. 둘의 기능은 완전히 같고 제공 방식만 다를 뿐인데, 규제가 다르다.

본질적인 개선방법은 디지털 금융이 아니라 지급서비스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같은 내용을 담은 법인 유럽의 PSD도 우리와 같은 해에 도입되었는데, 현재 유럽은 이를 개정한 PSD2가 시행 중이며 이를 한번 더 개정한 PSD3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싱가포르는 2019년 기존의 전자금융 및 지급결제 감독체제를 폐기하고 지급서비스 시장을 총괄하는 지급서비스 법을 제정했다. 한국이 많이 늦다고 볼 수 있다.”

─주요국이 디지털 금융에 맞춰 규제체계를 개편한 사례가 있나.

“유럽, 인도, 일본, 싱가포르, 중국 등 굉장히 많다. 싱가포르는 이커머스가 판매자에게 직접 대금정산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싱가포르통화청(MAS)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커머스의 나라인 중국에서는 이커머스 업체가 직접 정산(2차 정산)을 하지 않고 별도의 지급기관을 통해 대금을 정산하는 구조를 공식화했다. 정산대금은 고객자금(비부금)으로 분리돼 중앙은행에 전액 예치하도록 강제한다. 이커머스가 활발하게 이뤄질수록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규제가 강력한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중국만큼은 아니어도 유럽, 미국보다 이커머스 시장이 큰데, 규제는 걸음마 수준이다. 티메프 사태의 피해금액(약 1조2790억원)은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피해금액(약 2조8000억원)의 절반에 가깝다. 심지어 같은 구조의 시장실패가 세 번이나 발생했다. 문제가 터졌음에도 고치지 않아서다. 국내 경기가 악화될 수록 제3, 제4의 티메프 사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