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 급등으로 금융지주 자본건전성이 악화하고 있다. 환율이 계속 출렁이면 금융지주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지주들은 분기 말 기준 환율을 토대로 위험가중자산(RWA)과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계산한다. 지난 3월 31일 원·달러 환율은 6.4원 올라 1472.9원에 마감했는데, 종가 기준으로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13일(1483.5원) 이후 최고치다.
CET1은 보통주자본을 위험가중자산(RWA)으로 나눈 값이다. 안전한 자본이 리스크에 비해 얼마나 충분한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비율이 높을수록 건전성이 크다는 의미다. 국내 금융 당국은 12% 이상을 권고하고 있지만 금융지주는 13% 이상을 목표로 CET1을 관리 중이다. 금융지주들은 13% 초과분을 주주환원에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환율이 CET1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강달러는 외화대출의 원화 환산액이 커지면서 위험가중자산(RWA)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RWA 증가는 CET1의 주요 상승 요인이 된다. 일반적으로 원·달러 환율 10원당 CET1은 1~3bp(1bp=0.01%포인트) 움직인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환율이 오르면서 금융지주들은 경영계획을 재편하고 1분기 CET1의 기대치를 낮게 조정하는 등 대비를 마련해 왔다. 지난해 10월 평균 원·달러 환율은 1361원 수준이었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과 비상계엄, 탄핵 정국 등을 맞으면서 급등세를 보이며 1400원대 후반까지 치솟았다.
실제로 2024년 말 기준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CET1 평균은 12.84%로, 전년 동기(12.97%) 대비 0.13%포인트 하락했다. 분기 말 기준 환율을 토대로 CET1 비율을 계산하는 만큼 지난달 31일 환율이 1분기 비율의 등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트럼프 상호관세 발표 등이 예정돼 있어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로 뛸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날 오전 9시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72원대를 기록하며 보합권에서 움직였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4월 예고된 무역분쟁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외환시장은 안전통화인 미 달러에 대한 선호도를 높일 것”이라면서 “환율은 2분기까지 미 달러 강세 기조에 연동해 오름세를 유지하며 불확실성 확대 시 원·달러 환율 상단은 1500원 내외로 높아질 수 있다”고 봤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밸류업에 나선 금융지주들의 CET1이 다시 하락할 위기에 처하면서 금융권의 건전성 관리에는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KB금융의 CET1은 13.53%, 하나금융 13.22%, 신한금융 13.06%, 우리금융 12.13%, 농협금융 12.44% 등 금융 당국의 권고를 겨우 맞추는 수준에 그쳤다.
금융권 관계자는 “CET1이 하락하더라도 지난해 금융지주들의 실적이 좋았기 때문에 관리가 가능한 수준으로 보고 있긴 하다”면서도 “다만 다양한 시나리오를 토대로 위험자산을 축소하는 등 리스크 관리에 들어갈 가능성도 큰 상황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