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의 큰손’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한 국내 기업 주주총회와 주총 안건 수가 현 정부 들어 줄곧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에는 기업과 대화 건수도 전년 대비 급감했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에 대한 투자 비중을 계속 축소하는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국내 증시의 밸류업(가치 제고)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줄어드는 상황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동안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기업의 투명성을 개선하는 카드로 여겨졌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6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국내 상장사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한 사례는 현 정부가 출범한 2022년 825개에서 2023년 799개, 2024년 756개로 3년 연속 감소했다. 지난해의 756개는 2017년(708개) 이후 가장 적었다.

국민연금이 참여한 주총이 줄어드니 의결권을 행사한 수도 덩달아 감소했다. 국민연금이 찬반 여부를 제시한 주총 안건 수는 같은 기간 3439건에서 3165건으로 줄었다. 3165건은 2864건을 기록한 2018년 이후 가장 적은 규모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기업과의 대화’도 대폭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이 2019년부터 시행한 기업과의 대화는 배당 정책 등 기업 가치와 연관된 사안에 대해 투자 기업에 의견을 전달해 자발적인 개선을 유도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서한 발신 또는 비공개 면담한 기업 수는 2023년 172곳이었는데, 작년 147곳으로 14.5% 감소했다.

특히 서한(비공개+공개) 발신 건수가 137곳에서 40곳으로 71% 급감했다. 다만 비공개 면담은 160곳에서 208곳으로 증가했다. 서한 발신, 비공개 면담을 모두 합친 국민연금과 기업 간 대화 수는 2023년 297건에서 지난해 248건으로 줄었다.

조선 DB

시장에선 국민연금이 전체 투자자산 대비 국내주식 비중을 계속 줄여가는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 중기자산배분안에 따르면 2017년 20% 수준이던 국내주식 비중 목표치는 2029년 말 13%까지 축소된다. 작년 말과 올해 말 목표 비중은 각각 15.4%, 14.9%다.

반면 국민연금의 해외주식 비중 목표는 작년 말 33.0%에서 올해 말 35.9%로 커진다. 두 자산 비중 격차가 지난해 17.6%포인트(P)에서 올해 처음으로 20%P를 넘어서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기금운용 정책의 방향성을 ‘해외·대체 투자 강화를 통한 수익률 극대화’에 두고 있다. 해외 투자 비중은 2028년 60%로 커진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중장기 자산배분 계획을 수정하지 않고 지금 상태로 계속 가져가면 주총 시즌 영향력은 자연스레 점점 약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 상장사에 대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줄어드는 상황을 신중하게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투자 여력이 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국내 상장사가 주주친화적인 정책을 펼치는 데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줄어드는 것은 그 압력이 감소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현 정부는 2022년 5월 출범과 함께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국민연금이 정부 정책의 큰 줄기를 거스르기 힘든 구조란 점을 고려할 때 3년 연속 의결권 행사 위축은 이 정책과 방향이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