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말이 시작된다. 스코어는 3-1이다. 2점 뒤진 홈 팀의 마지막 공격이다. (5월 31일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 지바 롯데 마린즈-니폰햄 파이터즈)

연속 안타로 기회가 열린다. 무사 1, 2루에서 희생 번트가 성공됐다. 1사 2, 3루의 동점 기회다. 하지만 첫 번째 대타(요시다 겐고)가 삼진으로 물러난다. 절망적이다. 이제 아웃 1개만 남았고, 타순은 9번 차례로 내려간다.

다시 타임이 걸린다. 또다시 타자가 바뀐다. 연속된 대타 작전이다. 감독이 심판에게 교체 선수를 통보한다. 그런데 전혀 뜻밖이다.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다. “핀치 히터, 야자와 고타.”

다들 깜짝 놀란다. 뭔가 착각이 있겠지. 모두가 그런 표정으로 신조 쓰요시(53) 감독을 바라본다.

그도 그럴 법하다. 대타로 호명된 야자와는 왼손 타자다. 상대할 마운드의 투수는 좌완(스즈키 쇼타)이다.

좌우놀이가 의미 없다고 해도 그렇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좌투수를 상대로 좌타자를 대타로 쓴다고? 아무리 괴짜 감독이라도 이상한 선택이다. 당시 벤치에는 엄연히 우타자 1명(요시다 겐고)이 남아 있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더 기가 막힌 이유는 따로 있다. 대타로 선택된 야자와 고타(24)의 평소 역할이다. 주로 대주자 요원으로 활약하던 선수다. 타격은 영 신통치 않다는 얘기다.

이날도 마찬가지다. 벤치에서 내내 다리만 풀고 있었다. 스윙 연습은커녕 배트는 잡아보지도 않았다. 갑작스러운 하명에 대충 방망이 하나 골라잡았다. 부랴부랴, 허둥지둥 타석에 들어섰다.

그런데 뜻밖의 캐스팅이 대성공을 거둔다. 야자와의 타격에 에스콘 필드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어설프게 맞은 타구가 중견수 앞에 떨어진 탓이다. 2사 후에 가장 좋은 빗맞은 적시타다. 주자 2명을 모두 편안하게 홈을 밟았다. 1-3 스코어는 단번에 3-3으로 바뀐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1루에 나간 야자와는 본래의 역할까지 충실히 해낸다. 2루 도루를 성공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군지 유야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았다. 9회 말 2사 후에 극적인 역전 끝내기 승리가 완성됐다.

경기 후 신조 감독에게 질문이 쏟아진다. ‘도대체 왜? 무슨 생각으로? 대타를 그렇게 썼냐?’ 하는 궁금증이다.

“글쎄, 아시다시피 야자와 군은 달릴(대주자) 준비만 하고 있었다. 방망이 같은 건 1mm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나도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냥 어떤 영감 같은 것이 강력하게 뇌리에 스쳤다.”

그걸 신조 감독은 ‘감퓨터(勘ピュタ)’라고 표현한다. 일본어로 하면 ‘컴퓨터’와 음가가 비슷한 단어다. ‘감(勘, 헤아린다는 뜻)+컴퓨터’의 합성어다. 그러니까 감에 의지한 선택이나 결정 등을 뜻하는 신조어다.

대타로 나선 당사자도 놀라기는 똑같다.

“이제나저제나 대주자로 나갈 기회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대타로 불러 주셨다.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100% 집중했다. 그리고 강한 의지가 실린 타구였기에,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가 됐다고 생각한다.” (야자와 고타, 경기 후 히어로 인터뷰)

야자와 고타(173cm, 71kg)는 프로 3년 차다. 2022년 드래프트 1번으로 입단해 투수 겸 외야수로 뛰고 있다. 오타니 쇼헤이 이후로 니폰햄 구단에서 크고 있는 또 하나의 이도류 지망생인 셈이다.

아직 양 쪽에서 이렇다 할 실적은 내지 못한다. 마운드에서는 불펜으로만 19차례 등판했다. 1승 2패 3홀드, 평균자책점은 3.52를 기록 중이다. 최고 150㎞ 중반의 빠르기가 장점이다.

타자로는 3년간 85게임에 나섰다. 통산 타율이 0.186이다. 50미터를 5.8초에 주파하는 달리기 실력을 가졌다. 덕분에 대주자 요원으로 활용도가 높다. 올해는 타자에만 전념한다.

한편 니폰햄 화이터즈는 이날 승리로 28승 20패 2무승부, 승률 0.583으로 퍼시픽리그 1위를 질주 중이다.

[OSEN=백종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