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극장 심야 상영관에서 근무하는 직원 A씨는 지난 18일 새벽 1시쯤 상영관을 청소하던 중 1억2000만원치의 수표를 주웠다. A씨는 즉각 경찰에 신고했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그에게 유실물법에 따라 물건 가액의 5∼20% 범위에서 소정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그런데 만약 A씨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수표를 그냥 집으로 가지고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정다운=일러스트⋅조선일보DB

19일 법률전문가들은 이 경우 ‘점유이탈물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말했다. 이 죄는 유실물이나 타인의 점유를 이탈한 재물을 횡령하는 범죄를 말한다. 일례로 B씨의 지갑에서 만원짜리 지폐가 흘러나왔는데, 이를 본 C씨가 만원권 지폐를 주운 뒤 돌려주지 않는다면 점유이탈물횡령죄(1년 이하 징역형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형)가 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보다 형량이 더 무거운 절도죄(6년 이하 징역형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

은행 ATM 근처에서 습득한 물건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자영업자 김모(65)씨는 5년 전 은행 ATM에서 현금을 인출하다 기계 위에 올려진 지갑을 발견하고 주인을 찾아주려고 지갑을 챙겼다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은행 문이 닫혀 있어 다음날 주인을 찾아주려고 집으로 지갑을 가지고 갔던 것"이라며 "다음날 오전 가게 일로 바빠 은행이나 경찰서에 바로 방문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경찰이 가게로 들이닥쳤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은 김씨를 절도죄 혐의로 검찰로 송치했다. 김씨는 과거 절도와 관련한 전과 이력이 없었고, 지갑 속 내용물을 사용하지 않은 채 보관하고 있었던 점 등이 참착돼 검찰이 기소를 유예하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당시 일을 회상하며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면서 "다시는 남의 물건을 주워서 집으로 가져오는 일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당시 김씨에게 적용된 죄목이 점유이탈물횡령죄가 아닌 절도죄였던 이유는 ATM 인근에 설치된 은행 폐쇄회로(CC)TV 때문이었다. 주인으로부터 점유가 이탈된 물건을 가져가는 점유이탈물횡령죄와 달리 절도죄는 타인이 점유 중인 재물을 절취한 행위를 말한다. ‘타인이 점유 중인 상태’에서만 이 죄가 성립한다는 말이다.

법무법인 대한중앙의 조기현 변호사는 "은행 같은 시설물에는 CCTV가 있는 경우가 많아 시설물 관리자의 간접적인 점유가 인정된다"며 "이 때문에 물건을 훔치지 않고 유실물을 주워가기만 해도 시설물 관리자의 간접점유 중인 재물을 절취한 것으로 봐 절도죄로 처벌되곤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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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땅에 떨어진 휴대전화나 신용카드를 주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보통은 점유이탈물 횡령죄가 성립하는데, 은행 ATM처럼 CCTV 등이 설치된 장소에서는 절도죄가 성립될 수 있다. 이 경우, 자신이 주운 물건을 가질 의사가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경찰과 법률전문가들은 주운 물건이나 돈은 그 즉시 경찰에 신고하거나, 시설물 관리자에게 알려야 범죄(절도 또는 점유이탈물횡령) 의사가 없다는 점이 입증된다고 조언한다.

조기현 변호사는 "만약 바빠서 경찰이나 시설물 관리자에게 바로 신고할 수 없는 경우에는 주인을 알수 없는 물건을 줍지 않는게 낫다"며 "본인이 돈이나 물건을 불법적으로 습득할 의사가 없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게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