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외국인들의 부동산 투자를 억제·제한하는 법안들이 연이어 발의되고 있지만 꼼꼼하지 못한 준비로 법안이 폐기당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실효성 있는 규제가 준비되기는커녕 '결국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11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의 국내 건축물 거래 건수는 2만1048건으로 전년보다 18.5% 증가했다. 부동산원이 지난 2006년 1월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대 규모다.
외국인의 투자는 주로 서울 강남구 등 수도권에 집중됐다. 지난해 8월 국세청 조사에서는 외국인 소유주가 한 번도 거주한 적 없는 아파트가 32.7%나 되는 것으로 나타나 외국인 투자가 투기성 수요로 의심받기도 했다.
이에 지난해부터 외국인의 부동산 투자를 규제하는 내용의 법안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부당한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국제법상 '상호주의' 원칙을 간과한 섣부른 규제안들이 발의되면서 진척 없이 공회전(空回轉)만 하는 상황이다.
무소속 이용호 의원은 지난해 8월 외국인의 주택 거래에 대해 취득세와 양도소득세를 중과하는 내용의 지방세법·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외국인이 주택을 살 때 취득세 표준세율(1∼4%)에 최대 26%의 추가 세율을 적용해 최대 30%까지 부과하며, 외국인이 토지나 건물을 양도할 때는 기존 양도세율에 5%의 추가 중과세율을 적용하는 내용이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이 의원의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에서 "외국인의 투기성 부동산 매입이 우려되지만 외국인에 대한 취득세 중과는 상호주의에 위배될 수 있고, 취득 당시에는 투기성 취득인지 여부를 알기 어려워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고, 법안은 이후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폐기됐다.
이같은 전례에도 불구하고 국회에는 상호주의 원칙을 넘나드는 법안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발의돼 계류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은 지난 2일 외국인이 국내은행에서 부동산담보 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 일명 ‘외국인 부동산담보 대출 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은행이 대출신청일 기준으로 2년 이내에 국내 근로소득이 없는 외국인에게 부동산담보 대출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상호주의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어 실제 본회의까지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소병훈 의원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상호주의 원칙이 명시된 세법과 달리 은행법에서는 별도의 규정이 없다"면서도 "소관 기관인 금융위원회에서 추후 상호주의 적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정향의 김예림 변호사는 "상호주의와 같은 국제법·국제관습법은 국내법에 명시가 됐는지 여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별도의 협정이 없다면 따로 법령에 명시되지 않아도 적용되는 것으로 보아, 국제법적 기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 "상호주의 원칙을 임의로 해석해 규제를 시행할 경우 타국과 마찰이 생길 수 있다"며 "상호주의로 인해 해외에 투자하려는 한국인이 피해를 볼 가능성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의 '부동산 거래 신고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이 법안은 외국인이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에 부동산을 매입하려고 할 때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국인 역시 규제 지역에서 각종 규제를 적용받지만,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아닌 이상 사전 허가를 받지는 않는 만큼 이 역시 과도한 외국인 규제로 해석될 수 있다. 김승수 의원실 관계자는 "급등하는 부동산 시장에서 자국민을 우선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발의한 법률"이라며 "국제법 측면의 검토도 추가로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계류 중인 외국인 부동산 투자 제한 규제법안 가운데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한 것은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안이다. 홍 의원의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은 부동산 거래에 있어 상호주의를 강화하자는 내용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특히 주거용 부동산의 경우 해당 국가가 한국인에게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취득과 양도를 허용하기로 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한국인이 중국의 부동산을 취득할 수 없도록 한 중국 법에 따라 중국인의 한국 부동산 취득 역시 제한된다.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실이 지난달 16일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부동산 거래량 2만6836건(약 11조2409억원) 가운데 51.3%에 달하는 1만3788건이 중국인 또는 중국계 자금이었다. 중국인의 부동산 거래는 지난 정부인 2016년에는 7694건이었지만, 지난해 1만3788건으로 4년 만에 79.2% 폭증세를 보였다. 홍 의원의 법안이 통과될 경우 중국인들의 부동산 매수에 직격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