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산업현장·병원 등 일상 생활속 줄임말, 두문자어(頭文字語)가 많아
Hz(헤르츠), w(와트), v(볼트) 같은 단위는 주로 '한글자 줄임말'로
거대한 소비시장 중국을 웬만큼 활용하려면 중국 소비자를 내수시장 분석하듯이 알아야 할 일이고, 그런 의미에서 소비자와 시장이 쓰는 ‘말’ 문화는 당연히 시사점이 있다. ‘말'은 사회와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한다. 그리고 ‘말’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글로벌 기업들과 본토 기업들은 ‘말’ 문화도 중국 마케팅에 이용한다.
여느 나라들과 같이 중국에서도 ‘줄임말’을 써온 전통은 오래 되었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사람들이 자판(键盘∙건반)을 사용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줄임말 사용은 더욱 많아졌다. 먼저 글에서는 중국 사람들이 사용해온 ‘줄임말’ 즉 축약어를 정의하고, ‘씨(氏)’가 들어간 줄임말 사례를 골라 의미를 살펴 보았다. 이번에는 학교, 산업현장, 병원 등 일상 생활속의 다른 줄임말들을 몇개 골라 소개한다. 줄임말의 용례를 통해 중국 시장과 소비자를 가늠하고 읽어 본다.
앞글에서 중국 사람들이 수학을 배울 때 ‘피타고라스(毕达哥拉斯∙삐다거라스) 정리’를 외국어 사람이름의 중국어 음차 앞글자만 따고 그것에 ‘씨(氏)’를 붙여 ‘삐(毕) 씨(氏) 정리'로 줄여 부른다고 했다. 그리고 어휘축약 방식중에서 각 단어의 앞글자를 하나씩 따서 줄임말을 만드는 두문자어(acronym)도 일상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학의 예를 들어보면, 중국인들은 ‘평행 이동’을 ‘평이(平移)’로 줄여 부른다. 참고로 북한에서도 중국의 영향을 받았는지 관련된 말이 ‘평이’라고 되어있다.
비슷하게 일상 생활의 어휘들에서 두문자어 방식으로 앞글자를 하나씩 추려 말을 줄인 것은 우리말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고터'는 고속 터미널, ‘국영수'는 국어 영어 수학, ‘과탐'은 과학 탐구, ‘사탐'은 사회 탐구인 것이다.
중국의 예를 알아본다. 교차로가 ‘입체 교차 다리’ 형식일 때 ‘입교교(立交桥)’라고 줄여 부른다. ‘강철(钢材∙강재) 구조 교량’은 ‘강구교(钢构桥)’로 줄여 부른다. 직업교육 위주의 ‘중등 전업학교’는 ‘중전(中专)’으로 줄여 부른다. 초급대학인 ‘대학 전과학교’는 ‘대전(大专)’이다. ‘고등 직업교육학교’는 ‘고직(高职)’이다. 다만 정규대학은 ‘본과(本科)’라고 부르기 때문에 줄임말의 방식이 위와 다르다.
‘문학·사학·철학’을 묶어 ‘문사철(文史哲)’이라 줄여 부르는데, 한국에서도 ‘문사철'로 같다. ‘수신(修身) 제가(齐家) 치국(治国) 평천하(平天下)’를 한글자씩 따서 ‘수제치평(修齐治平)’이라 줄여 부르며 교훈으로 삼는다.
경제 현장에서는 ‘연구 제조’를 줄여 ‘연제(研制)’라고 이야기 한다. ‘광전도(光导) 섬유’의 줄임말은 ‘광섬(光纤)’이다. ‘화학 비료’를 줄여 ‘화비(化肥)’로 부른다. ‘모듈(模块∙모괴) 조립(组件∙조건)’의 줄임말은 ‘모조(模组)’로 통용된다. ‘가성 중합(聚合∙취합)’의 현장 줄임말은 ‘가취(加聚)’가 된다.
‘열역학 에너지(能∙능)’의 줄임말은 ‘열능(热能)’이다. 참고로 외국어인 ‘에너지’를 중국어로 ‘능(能) 또는 능량(能量)’이라고 번역하는데, 중국인들이 평소 매우 좋아하는 단어이다. 예를 들어 중국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 가운데 ‘정 능량(正能量)’을 우리말로 바꾸면 ‘긍정 에너지’ 정도가 되겠다. 병원에서 ‘병리 검사’하는 것의 줄임말은 ‘병검(病检)’이다. ‘갑항(甲亢)’이라 하면 ‘갑상선기능 항진증’을 이르는 줄임말로 알아 들으면 된다.
그렇다고 줄임말 규칙이 반드시 두문자어 방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규칙도 있으니 외국인은 좀처럼 외우기 쉽지 않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비전(非典)’이라는 줄임말은 ‘비전형성 폐렴' 등 비전형적∙신종 질환의 앞 두글자를 딴 줄임말이다. 우리도 사용하고 있는 ‘뇌경색(脑梗塞)’이라는 말은 ‘뇌혈관 경색’을 줄인 말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연구 개발(R&D)’의 줄임말은 두문자어 연개가 아니라 불규칙인 ‘연발(研发)’로 각 단어의 앞글자와 뒷글자를 딴 것이다. 마찬가지로 ‘열(热力∙열역) 발동기(发动机∙엔진)’의 줄임말은 열발이 아니라 ‘열기(热机)’이다. 불규칙으로 각 단어의 뒷글자와 앞글자를 딴 줄임말도 있을 수 있어서, ‘전장(전계) 강도’의 중국어 줄임말은 전강이나 전도가 아니고 ‘장강(场强)’이다.
우주의 은하계를 일컫는 중국어로는 은하(银河), 천하(天河), 성하(星河) 등이 있는데 ‘항성계(恒星系)’는 줄여서 ‘성계(星系)’라고 부른다.
외국어를 중국어로 옮겨 표기하는 것 가운데 특이한 사례라고 하면, Hz(헤르츠), w(와트), v(볼트) 같은 단위를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이다. 중국어는 이런 류를 한문의 ‘한글자 줄임말’로 대체하여 표기하는데, 아래와 같은 용례들이 있다. 중국에서는 ‘赫(허)’가 단위 Hz(헤르츠)이다. 헤르츠를 중국어로 음차하면 허쯔(赫兹)이고 앞 한글자만 따서 단위로 만들었다. 참고로 렌터카 회사 허츠(Hertz)의 중국 현지 브랜드 역시 허쯔(赫兹)이다.
중국에서는 ‘瓦(와)’가 단위 w(와트)이다. 와트를 중국어로 음차하면 와터(瓦特)이고 앞 한글자 줄임말이 단위가 되었다. 한편 한국에서 과거에 사용하던 말인 촉광(烛光)이라는 단어는 와트와 비슷한 뜻으로 중국에서도 쓰인다. 중국에서는 ‘伏(푸)’가 단위 v(볼트)이다. 볼트를 중국어로 음차하면 푸터(伏特)이고 앞 한글자 줄임말만 따서 단위로 쓴다. 참고로 자동차 회사 포드(Ford) 역시 중국에서 푸터(福特)이지만 글자가 다르다.
중국에서 ‘欧(오우)’는 단위 옴이다. 옴을 중국어로 음차하면 오우무(欧姆)이고 앞 한글자 줄임말이 단위가 되었다. 중국에서 ‘奥(아오)’는 에르스텟이다. 에르스텟을 중국어로 음차하면 아오스터(奥斯特)이고 앞 한글자만 따서 단위로 쓴다. 중국에서 ‘安(안)’은 암페어이다. 암페어를 중국어로 음차하면 안페이(安培)이고 앞 한글자만 따서 쓴다. 참고로 일본의 전수상 아베는 중국에서 안베이(安倍)이다.
중국에서 줄임말 ‘帕(파)’는 단위 파스칼(帕斯卡∙파스카)의 표기이다. 중국에서 ‘坎(칸)’은 칸델라(坎德拉∙칸더라)이다. 중국에서 ‘法(파)’는 패럿(法拉∙파라)이다. 중국에서 ‘库(쿠)’는 쿨롱(库仑∙쿠룬)이다. 중국에서 ‘摩(모)’는 몰(摩尔∙모얼)이다. 중국에서 ‘焦(쟈오)’는 줄(焦耳∙쟈오얼)이다. 중국에서 ‘开(카이)’는 켈빈(开尔文∙카이얼원)이다. 중국에서 ‘韦(웨이)’는 웨버(韦伯∙웨이보)이다.
중국에서는 ‘特(터)’가 단위 T(테슬라)이다. 테슬라를 중국어로 음차하면 터스라(特斯拉)이고 앞 한글자 줄임말을 따서 단위로 쓴다. 전기차 기업 테슬라(Tesla)의 중국 현지 브랜드 역시 터스라(特斯拉)로 같다.
◆ 필자 오강돈은...
《중국시장과 소비자》(쌤앤파커스, 2013) 저자. (주)제일기획에 입사하여 하이트맥주∙GM∙CJ의 국내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등 다수의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이후 디자인기업∙IT투자기업 경영을 거쳐 제일기획에 재입사하여 삼성휴대폰 글로벌 마케팅∙커뮤니케이션 프로젝트 등을 집행했고, 상하이∙키예프 법인장을 지냈다. 화장품기업의 중국 생산 거점을 만들고 사업을 총괄했다. 한중마케팅(주)를 창립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졸업, 노스웨스턴대 연수, 상하이외대 매체전파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