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등 외국 대학에 40여억원을 기부했다가 ‘세금 폭탄’을 맞은 백범(白凡) 김구 선생의 자손들이 당초 계획했던 행정소송을 철회하기로 했다. 정부 입장이 강경한 데다 헌법재판소 재판까지 준비해야 하는 등 법적 절차가 만만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19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구 후손과 가까운 한 지인은 "김구 가문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돈·시간을 낭비하고 정신·육체적으로 소송 피로감이 커질 것으로 예상하는 점 등이 소송을 포기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김구 선생의 차남인 고 (故)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은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2006년부터 10여년간 미국 하버드대, 브라운대, 대만 타이완 대학 등에 42억원을 기부했다. 항일 투쟁의 역사를 알리는 ‘김구포럼’과 한국학 강좌 개설, 장학금 지급 등 한국을 알리는 데 써 달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김 전 총장이 2016년 5월 별세하고 2년여가 지난 2018년 10월, 국세청은 김 전 총장의 자녀들에게 기부금에 대한 증여세와 상속세 27억원을 부과했다. 현행법상 공익법인에 기부한 재산은 상속·증여세를 감면받을 수 있지만, 외국 대학은 국내에서 공익법인으로 분류되 않기 때문에 세금을 감면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원래 상속·증여세는 상속이나 증여를 받은 사람(이 경우 외국 대학)이 내야 하지만, 이 사안처럼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또는 법인)에게 세금을 걷지 못할 때는 증여한 사람이 내도록 돼 있다. 해외 거주자에게 국내 과세 당국이 세금을 받아내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백범 후손들은 국세청의 세금 부과에 불복해 지난해 1월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다. 지난 9일 조세심판원은 국세청의과세 절차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 판단, 27억원 중 절반가량인 14억원에 대한 세금 납부 통지 처분을 취소했다.
후손들이 나머지 13억원에 대해서도 소송을 통해 나머지 다퉈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막상 준비하면서 앞으로 오랜 기간 소모적인 법정공방이 오갈 것이라고 예상 돼 소송을 포기하고 정부에 세금을 내기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국세청 안팎에서는 과세당국이 국내 납세자에 징세하기 전 해외 기관에 대한 과세 노력부터 해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김구 가문은 하버드대 등에 기부 사실 확인 요청을 했지만 하버드대는 한국 국세청의 공식 요청이 있어야만 관련 확인이 가능하다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김구 가문은 국세청에 해외 대학을 상대로 관련 자료를 공식적으로 요청해 줄 것을 건의했지만, 국세청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