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택배 동대문지사 한 대리점에서 일하던 김모(남·36)씨는 지난 8일 새벽 4시28분 동료에게 "집에 가면 5시인데, 밥 먹고 씻고, 바로 터미널 가면 한숨도 못자고 분류작업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너무 과중해 힘이 든다는 취지였다. 그리고 4일 뒤인 12일 김씨는 자택에서 숨진 채 동료에 발견됐다.
김씨가 동료에게 메시지를 보낸 날, 서울 강북구 CJ대한통운 택배기사 김원종씨(48)도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그는 택배 배송 중에 호흡곤란을 호소하다 그대로 사망했다고 한다.
올해 들어 이렇게 사망한 택배기사만 9명이다. 비대면 거래로 택배 물량이 크게 늘어난 탓에 숨진 택배기사 모두 과로사 또는 과로사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에 지난 12일 오전 6시 경북 칠곡에 있는 쿠팡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자 20대 A씨도 집에서 숨졌다. 그는 지병이 없었고, 술·담배는 하지 않았다.
택배기사는 현행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직)로 분류돼 있다.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근로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학습지 교사나 대리운전, 음식배달 기사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기존의 임금근로자와 유사하게 일하고 있으면서도 근로기준법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사업주에게도 계약 관계상 ‘개인사업자’인 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없다.
일부 특수고용직들은 사용자가 정한 업무 규칙 등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근로자성’(근로자로 인정할 수 있는 성질)을 인정 받아 근로기준법으로 보호를 받는다. 하지만 대다수의 특수고용직은 근로자면서 근로자가 아닌 이른바 ‘법 밖의 근로자’라는 인식이 더 강하다. 근로자성 인정도 소송 당사자만 해당된다. 모든 특수고용직이 근로자성을 인정 받으려면 매번 소송을 걸어야 하고, 또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업무 과중으로 죽은 택배기사들은 산재보험을 적용받기도 어렵다. 특수고용직에 포함된 14개 업종(보험설계사·골프장캐디·대리운전기사·퀵서비스기사·방문판매원·학습지교사·방문교사·대여제품방문점검원·대출모집인·신용카드회원모집인·택배기사·건설기계종사자·화물차운전기사)은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 들어가지만, 본인이 적용받지 않겠다고 하면 산재보험에 가입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를 악용해 일부 택배업체는 택배기사에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말 것을 종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업체로부터 일을 받아야 하는 택배기사 입장에서는 이를 거부하기 힘들다. 요구를 거부하면 일이 끊기기 때문이다. 경기도에서 택배일을 하는 한 기사는 "동료들에게 산재보험에 들지 말라고 하는 업체 관계자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위원은 지난 15일 고용노동부로 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숨진 택배기사 김원종씨의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가 대필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양 의원은 "김씨 신청서에 적은 필체와 다른 사람의 신청서 필체가 같아 사실상 한 사람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며 "해당 건을 포함해 3명이 각 2장씩 총 6장의 필체가 상당 부분 유사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
IT(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특수고용직들도 ‘플랫폼 근로자’에 포함되면서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근로자는 더욱 증가했다. 이 때문에 기존의 임금근로자와 플랫폼·특수고용직 근로자를 모두 아우르는 새 노동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현재의 근로기준법에 플랫폼·특수고용직을 포함시키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근로 특성상 근무시간과 장소를 본인이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물론 근로자로 인정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산업이 다변화하고, 근로를 제공하는 형태도 다양해지면서 사용자와 근로자의 종속적 관계는 옅어지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기존의 근로기준법으로는 이들을 포섭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법을 폭넓게 해석하자는 논의도 있지만, 근로기준법으로 보호하기로는 복잡하고, 부작용이 예상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플랫폼이나 특수고용직의 업무 수행 방식이나 직업적 능력 등 다양성을 반영한 새로운 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플랫폼·특수고용직을 위한 법 체계인 ‘근로계약기본법’(가칭)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근로계약기본법은 가령 택배기사가 택배 분류·배송으로 보수를 얻는다는 것을 반드시 서면 계약하고, 해지 통보 절차나 보수 분쟁 시 절차를 규정하는 개념이다. 해고 제한이나 연차유급휴가 등 강력한 보호망은 제공하지 않지만, 서면 계약이나 해고 통지, 휴식(휴가와 휴일) 등을 보장한다. 박 원장은 "해외에서는 휴식을 보장해 달라는 게 가장 큰 요구"라며 "계약 관계가 유지되면서 적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면 과로로 쓰러지는 근로자들도 적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