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개정으로 韓 소득세율, G7 중간 수준으로 상향
소득세 인상 등 증세…"경기역행적인 세금정책" 지적
소득세 최고세율을 42%에서 45%로 3%P(포인트) 올리는 세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한국의 소득세율은 미국, 독일, 영국보다 높아지고 주요 7개국 선진국(G7) 중간 수준으로 올라간다.
지방세 등을 포함한 소득세율은 49.2%로 일본(55.9%), 프랑스(55.4%), 캐나다(53.5%)에 이어 4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독일(47.5%), 이탈리아(47.2%), 영국(45%), 미국(43.7%)의 소득세 최고세율이 한국보다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43.3%에 비해서는 6%P나 높은 수준에 이른다.
정부는 "세법개정을 통한 세수 증가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에 증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세 납부액의 40% 이상을 부담하는 상황에서, 고소득자의 세금부담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또 다른 문제를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50%까지 높이면 소득 활동 의욕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50% 육박한 소득세율, 고소득층 조세회피 유발 가능성"
2020년 세법개정안을 설명하기 위해 지난 20일 열린 사전 브리핑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증세라고 할 수 없다"고 수차례 말했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42%에서 45% 올리기는 했지만, 과세표준 10억원 이상인 1만6000명을 대상으로 한 제한적인 조치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번 개정을 통해 고소득자와 대기업으로부터 1조8000억원 가량 더 걷지만, 각종 비과세 감면 등으로 서민, 중소기업의 세부담이 1조7000억원 경감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세수 확대 효과가 크지 않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홍 부총리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는 "소득세 세율 인상으로 세금부담이 늘어나는 인원이 많지 않고, 세수 확보 규모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증세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그는 "실질적인 세율이 50%에 육박하면, 해당 세율을 적용받는 계층의 소득 활동 의욕이 떨어진다는 해외연구 결과가 있다"면서 "이번 개정을 통해 우리나라 소득세율이 그런 수준에 이르게 됐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도 "법인세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 25%까지 올라간 상황에서, 소득세율도 미국, 독일 등 상당수 선진국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게 됐다"면서 "세율을 과도하게 올리면 조세저항으로 세율만큼 세수가 늘어나지 않을 수 있는데, 그런 현상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고소득층 세금부담 비중, 이미 세계 최고 수준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가뜩이나 새계 최고 수준인 고소득층의 조세부담률을 더욱 높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과세표준 10억원 이상인 소득 상위 0.1% 계층은 지난 2017년 현재 전체 소득의 4.3%을 차지하고 있지만, 전체 소득세 납부액의 18.6%를 부담하고 있다. 소득상위 0.1%의 조세 부담 비중은 미국(19.3%)보다는 낮지만, 일본(17.2%)보다 높다.
소득 상위 1%와 소득 상위 10%의 조세 부담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과세표준 3억원 이상인 소득 상위 1%는 전체 소득의 11.4%를 차지하고 있는데, 전체 소득세 납부액의 41.8%를 차지하고 있다. 소득 상위 1%의 조세 부담 비중은 미국(38.4%), 영국(29.0%), 일본(38.6%), 캐나다(23.4%)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과세표준 9000만원 이상인 소득 상위 10%는 소득 전체의 36.8%를 차지하고 있는데, 전체 소득세 납부액의 78.5%를 부담한다. 전체 소득의 47.4%를 차지하는 소득 상위 10%가 세수의 70.1%를 부담하는 미국에 비해 고소득층에 대한 조세 전가 정도가 큰 상황이다. 영국과 캐나다의 경우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과 비슷한 30%대이지만, 조세 부담 비중은 각각 60.3%와 55.2%로 현저히 낮다.
이런 상황에서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은 고소득층 조세귀착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의 경우 근로소득자 면세 비율이 38.9%(2018년 귀속 소득 기준)로 근로자 10명 중 4명이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근로소득 면세율은 미국(30.7%), 영국(2.1%), 일본(15.5%) 등 세계 주요국에 비하면 한국이 가장 높다.
◇"경기후퇴기에 단행된 증세, 코로나 위기 극복에 걸림돌될 수도"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한국의 연 소득 10억원 이상 초고소득자들은 2014년에서 2018년 사이 소득이 50% 증가한 데 비해 세금 부담은 60% 가량 늘었다"며 "중산층 이하에서 세금을 내지 않는 상황에서 고소득층의 세금부담만 늘린다는 인식은 부자들의 조세회피를 조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경제위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등 증세가 추진된다는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경기침체는 이미 전문가들의 예상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1~20일 기준 수출은 전년대비 12.8% 감소해 5개월 연속 마이너스(-) 수출이 유력하다. 오는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3~-2%(전기비) 가량 역성장이 유력하게 관측된다. 지난 1분기(-1.3%)에 이어 두 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은 경기후퇴(리세션·recession)를 공식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경기후퇴기에는 각종 감세 정책을 통해 투자 의욕을 높이는 게 일반적인 정책 대응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로 인해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등 증세를 시작하는 것은 분명히 경기부양과 반대로 가는 측면이 있다"면서 "지출 확대로 증세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코로나 위기가 마무리된 이후 시작하는 게 올바른 정책 대응"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