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 범죄자의 얼굴과 연락처 등을 공개하는 웹사이트 ‘디지털교도소’에 대해 "운영진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무고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늘고 있다. 실제로 이 사이트에서는 최근 특정인의 신상정보가 ‘사실과 다르다’는 항의를 받고 삭제되는 일이 발생했다.
대학생 정모(20)씨는 지난 12일 고려대 커뮤니티 고파스에 올린 글을 통해 "디지털교도소에 올라온 당사자"라며 "디지털교도소에 올라온 사진과 전화번호, 이름은 내가 맞지만, 그 사이트에 올라온 모든 범행사실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디지털교도소는 정씨를 ‘지인능욕범’이라 소개하며 그의 신상정보를 공개한 바 있다.
정씨는 "현재 가족에게 모든 사실을 알리고 빠르게 후속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며 "변호사를 통해 고소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매우 화가나며 억울하고 당황스러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정씨는 자신의 신상정보가 공개된 이유에 대해선 해킹에 의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지난 8일에 모르는 사이트에 가입 됐다는 문자가 와서 URL을 누르고 비슷한 시기에 모르는 사람한테 휴대전화를 빌려준 적이 있다"며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그 사이트 가입이 화근이 돼 전화번호가 해킹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디지털교도소 운영진은 하루 뒤인 13일 정씨의 신상을 비공개 처리했다. 운영진은 전날 소셜미디어(SNS)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15일까지(정씨의 신상정보를) 비공개 처리하겠다"면서도 "(전화번호 해킹은) 여기 수감된 교도소 선배들이 이미 써먹은 변명이다. 혐의가 없어 내려간 것이 아니다. 피해자와 직접 얘기하라"고 했다.
운영진은 앞서 지난 8일 조선비즈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언론과 제보자를 통해 각종 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수집한다고 밝혔다.
당시 운영진은 "한 사건에 꽂히면 그 사건을 보도한 거의 모든 기자에게 메일을 보낸다"며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 그 사람 가운데 이름만 알려주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말해주겠다'는 식으로 호소하면 해당 사건 범죄자에 대한 정보가 어느 정도 완성된다"고 했다. 이후 2회 이상 검증한 정보만을 공개한다고 설명했다.
또 "SNS 팔로워가 4만명쯤 되니 제보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며 "제보를 받은 뒤 여러 통로를 통해 범죄자 정보에 대해 검증하고 나서야 신상을 공개한다"고 했다. 언론과 제보를 통해 신상 공개를 하는 비율이 ‘3대 7’이라는 설명도 했다.
그러나 법조계와 범죄수사 전문가 등은 운영진이 자의적 판단에 따라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디지털교도소의 운영 방식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민간이 개인의 동의 없이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한 사람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위법행위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또 "경찰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강력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데 신중한 입장"이라며 "특히 누구에게나 개방되고 영구적으로 신상이 공개되는 디지털교도소의 신상정보 공개는 더 위험한 요소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디지털교도소는 ‘국가가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데서 발현된 ‘자경주의(自警主義)’적 현상인데, 이는 복수가 복수를 낳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성범죄 등 가해자에 대한 충분한 처벌이 이뤄지고 국가의 사법 체계에 대한 신뢰가 바로 설 수 있도록 하는게 근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신진희 변호사도 "디지털교도소의 경우 범죄 행위의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다"며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배드파더스’의 운영자와는 결이 다르다"고 했다.
배드파더스는 이혼 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비양육자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웹사이트다. 검찰은 배드파더스 운영자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 2018년 기소했지만, 지난 1월 법원은 배드파더스의 신상 공개가 공익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운영자에게 1심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일각에서는 디지털교도소의 명예훼손죄 적용 가능성을 두고 배드파더스처럼 공익 목적의 신상 정보 공개는 처벌을 면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신 변호사는 "배드파더스 신상공개는 양육 책임을 지게 할 최후의 보루로써 인정되지만, 디지털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들의 경우 형사 책임이 주어지는 데다 필요한 경우 경찰에서도 신상을 공개하기 때문에 배드파더스만큼의 필요성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찰은 논란이 커지자, 디지털교도소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대구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디지털교도소 운영자 등을 수사하고 있다고 13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