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창원시 의창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고깃집 주인 A씨(60·여)가 단골 손님 B씨(43·남)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했다. B씨는 흉기로 A씨의 복부 등을 수차례 찔렀다. 경찰이 B씨의 휴대전화를 디지털포렌식(증거분석) 한 결과 B씨는 A씨를 10년 가까이 스토킹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인 A씨의 아들은 지난 8일 "가해자 B씨를 엄중히 처벌해 달라"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호소문을 올렸다.

연도별 스토킹 범죄 처벌 건수 추이.

국내에서 스토킹은 ‘경범죄’로 분류돼 있어 적발이 돼도 처벌 수위가 낮다. 이 때문에 피해자는 오랜 기간 스토킹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가해 남성은 살인 혐의로 기소됐지만, 한국도 선진국처럼 스토킹을 ‘중범죄’로 다뤘다면 스토킹이 살인 사건까지 번지는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11일 경찰청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 처벌 건수는 지난해 583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스토킹 처벌이 시작된 2013년(312건)과 비교해도 두배 정도 늘었다.

전문가들은 스토킹 증가 추세는 솜방망이 처벌 규정 영향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행법상 스토킹은 경범죄인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분류된다. 경범죄이기 때문에 처벌 수위도 벌금형으로 약하다. 처벌 수위가 벌금 10만원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쓰레기 무단투기 처벌 수준과 같은 수준이다.

스토킹 범죄의 경우 신체나 재산 등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 발생 전에는 피해자가 아무리 공포를 느껴도 처벌 규정이 없고, 법원의 접근금지명령도 받을 수 없다. 경찰에 신고해도 처벌 가능성도 낮은 편이다. 지난해 경찰에 접수된 스토킹 신고(5466건) 가운데 처벌을 받은 비율(583건)은 10%대에 불과했다.

피해자가 경찰에 스토킹 신고를 했지만, 솜방망이 조치에 목숨을 잃은 사건도 있었다. 지난해 4월 경남 진주에서 발생한 ‘여고생 살인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여고생 C씨는 신변에 위협을 느껴 아래층에 사는 가해자 D씨의 스토킹 장면이 담긴 영상을 경찰에 제출하는 등 여러 차례 신고를 했다. 하지만 경찰은 스토킹 외에는 구체적 범죄행위가 없어 D씨를 잡아두지 않았다. 10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 밖에는 D씨를 제재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풀려난 D씨는 흉기를 들고 여고생 C씨를 찾아가 살인을 저질렀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처벌이 최대 벌금 10만원에 불과하다보니 신속하고 확실한 제재가 불가능하고, 이는 범죄억지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됐다"며 "스토킹은 언제든 살인이나 성폭행 등 강력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범죄이기 때문에 스토킹이 오랜 기간 방치되는 것은 피해자에게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스토킹은 성폭력 범죄나 살인 같은 중범죄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중범죄가 발생한 뒤에야 처벌이 이뤄지다 보니 스토킹이 강력범죄로 번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한민경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발표한 ‘스토킹 피해 현황과 안전대책의 방향’ 보고서를 보면 스토킹 피해가 있을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성폭력 범죄 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13.3배 더 컸다.

조선DB

국내와 달리 선진국에선 스토킹 범죄를 엄격히 처벌하고 있다. 미국은 50개 주에서 스토킹 금지법을 제정해 스토킹 가해자들을 징역형(2년 이상 4년 이하)에 처하고 있다. 일본도 스토킹 규제법에 징역형(1년 이하) 처벌 조항을 넣었다.

우리도 정치권에서 스토킹 범죄 처벌 수위를 높이기 위한 법안을 만들려는 시도는 나왔지만, 번번히 무산됐다. 지난 제19대 국회, 제20대 국회에서 스토킹을 처벌하는 현행법(경범죄 처벌법) 대신 별도의 스토킹 특별법을 만들거나 형법에 관련 조항을 신설해 징역형(3년 이하)과 벌금형(3000만원 이하)을 부과하도록 하는 개정안 등이 발의됐지만, 처리되지 못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행 법의 한계로 스토킹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해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관련 부처, 국회, 여성계 등과 협력해 스토킹 피해자 관점에서 법이 제정되도록 힘을 보태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