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한 이 말은 경제학계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일종의 ‘진리’에 가깝다. 그러나 유독 미국에만큼은 예외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4일 2분기 순차입 규모가 사상 최대인 2조9990억달러(약 368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발표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를 완화하기 위해 여기저기에 돈뭉치를 뿌린 탓이다.
작년 2분기 순차입액이 400억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1년 새 국채 발행으로 조달하는 차입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5배 더 늘어나는 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무너졌던 2009년 2분기와 비교해도 9배 가까운 규모다.
‘오마하의 현인’이자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투자 구루(guru)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가히 사상 최대라 할 만한 빚더미를 어떻게 바라볼까.
5일(현지 시각) 버핏은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 도중 ‘미국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자 단호하게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답했다. 이렇게 돈을 마구 끌어다 써도 아르헨티나처럼 ‘국가부도의 날’이 닥칠 위험은 없다는 뜻이다.
버핏은 "만약 미국이 자국 화폐가 아니라 다른 나라 통화로 채권을 이렇게 대거 발행했다면, 해당 화폐 환율에 따라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면서 "아르헨티나는 자국 화폐(페소)가 아닌 미국 달러로 채권을 발행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아르헨티나는 미국 달러로 찍은 1320억달러(약 160조원) 채권을 막지 못해 국가 부도를 선언했다. 경제 규모에 현격한 차이가 있지만 미국이 이번에 발행한 국채 대비 24분의 1 만큼을 막지 못해 두 손을 든 셈. 버핏은 이어 "가까운 미래에 자국 통화로 발행하지 않은 국채로 고생할 국가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코로나 사태 여파로 위험을 피하려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면 미국 달러로 채권을 찍어 낸 다른 국가들 국채 선물 롤오버(만기 연장)가 지연되거나 실패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2011년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시켰을 때도 글로벌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를 계속 사들인 점을 강조하면서 "그 어떤 기업이 직접 돈을 직접 찍어내는 정부보다 나을 수 있는가. 그런 기업은 없다"며 다른 국채 대비 달러로 찍어낸 미국 국채가 안전하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코로나 여파로 미국 경제는 이번 2분기 성장률이 지난 분기 대비 12% 감소하고, 연율로는 40%에 달하는 역사적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실업률도 10%를 넘어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수준이 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고용 유지와 경기 침체를 막는 것이 급선무인 만큼 미 재무부는 코로나로 피해를 입는 기업과 가계, 병원, 지방정부에 약속한 돈을 확보하기 위해 수조 달러에 달하는 재정 지출을 추가로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
스티븐 펄스타인 조지메이슨대 경제학과 교수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달러는 기축통화이고, 미국 경제는 규모로 봤을 때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생산성과 회복탄력성이 가장 큰 시장"이라며 "위기가 닥치면 전 세계 주식·채권 투자자들은 물론 각국 중앙은행이 미국 국채로 피신하기 때문에 미국은 지속적이고 대규모로 재정, 무역적자를 내면서도 달러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