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감사합니다”라고 조주빈은 말했다. 그 말은 이상한 주술처럼 들렸다. 언론은 그가 던진 미끼를 물었고, 뉴스는 홍해처럼 갈라졌다. 수만 명의 관전자가 가담한 성착취 사건과 ‘손석희’ 이슈로. 원치 않는 ‘사과를 당하고’ 구설에 오른 손석희 JTBC사장이나, 느닷없이 ‘감사를 받고’ 모골이 송연해진 국민이나 오물을 뒤집어쓴 기분인 건 매한가지다.
스릴러 영화에 어울릴 법한 이 다분히 현학적이고 논평적 메시지만 보면, 그는 자기 자신과도 접속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에는 주어도 없고 동사도 없다. 스스로에게조차 대상화된 자아와 뒤틀린 수사만 있을 뿐.
주어와 동사의 정확한 인식, 그 결과로 초래된 타인의 고통을, 나의 신체로 감지하고 언어로 감당하는 노력이 없으면 사과는 사실상 불가하다(그것은 엄청나게 힘든 자기 전복의 작업이다). 그 과정이 없기에 그의 언어는 순식간에 비약한다. 이 전지적이고 압도적이며 소름 끼치게 도취적인 ‘감사 인사'를 우리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동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성범죄 사건을 복기해 본다. 클럽 버닝썬과 유명 연예인들의 불법 성관계 동영상 유포 사건, 서지현 검사, 최영미 시인의 폭로로 들불처럼 일어난 ‘미투', 심지어 지난해 폐쇄된 성매매 사이트 ‘밤의 전쟁'에 인증샷과 함께 올라온 성매매 후기는 21만 개였다. 무수한 비명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n번방의 괴물'은 26만 명으로 세를 키웠다.
성범죄에 대한 무감각한 일부는 여전히 "야동 본 것 가지고 난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법사위에 모인 남성 법조인들조차 합성 음란물을 두고 "일기장에 그린 그림일 뿐"이라는 문제성 발언을 한다. 조주빈의 감사는 ‘여러분은 악마의 삶을 멈출 수 없을 것'이라는 ‘조롱과 선동'으로 읽힌다. 불이 켜지면 흩어지는 바퀴벌레처럼, n번방은 각자의 머릿속 뉴런 속에서 깊게 숨어 더욱 ‘야만화’ 될 거라고.
오랫동안 한국은 겉으로는 성에 대한 엄숙주의, 일상에서는 성매매와 희롱이 만연한 이중 도덕 사회를 유지해 왔다. 그 간극을 채우는 것은 성에 대한 근본적인 뒤틀림이다. 희롱과 추행, 착취와 폭행으로 이어지는 이 뒤틀린 성의식을 바로 잡을 근본적인 방법은 없을까?
독일 전문가인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의 저서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했다. 독일 아이들은 물건을 소비할 때 죄책감을 느끼는 반면, 한국 아이들은 성의식을 소비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여기서 김누리 교수는 ‘민주주의 최대 적은 약한 자아'라는 아도르노의 말을 중요하게 인용한다. 성을 부끄럽게 여기고 억압하는 사회일수록 슈퍼에고(도덕 규범)가 리비도(성충동)를 공격하고, 이때 죄의식이 점점 내면화되면 약한 자아가 고착된다는 것. 약한 자아를 가진 인간일수록 권력에 굴종하는 권위주의적인 인간이 된다.
독일은 바로 그 약한 자아 때문에 자신들이 나치에 굴종하고 유대인 학살을 저지른 2차 대전 전범국가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건강하고 단단한 자기를 만드는 성교육을 중요한 정치 교육으로 본다. 성은 자기 결정권을 기반으로 한 합의의 결과이며, 생명과 인권과 관련된 책임이 따르는 일임을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그렇게 성교육이 기초가 돼서 본능을 적절히 컨트롤하고 죄책감을 책임감으로 대체한 강한 자아가 생긴다. 자기 행위의 결과를 이해하는 민주 시민이 탄생한다.
n번방에 모인 사람들을 추측해본다. 겉으로는 멀쩡해보이지만, 안으로는 약한 자아를 가지고 권력에 굴종하는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인 사람들. 죄의식으로 탄생한 그들은, 연약한 상대를 골라 착취하고 노예화하고 협박하고 영혼을 파괴하면서, 죄의식에 조종당한다. 평범한 악마가 되는 줄도 모르고.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유대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고도, 시킨 일을 성실하게 했을 뿐이라고 발뺌하는 나치의 관료 아이히만을 ‘악의 평범성’이라는 명제로 설명했다. 약한 자아를 지닌 그는 자기 행위의 결과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유하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을 성찰하지 않았기에, 어떤 변명도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감사하다.” 이 말이 종국엔 강한 자아를 지닌 시민의 메시지로 완성되길 바란다. 하루빨리 공교육 과정에서 정치교육, 생태교육과 연결된 입체적인 성교육이 뿌리내리길 기대한다. n번방 특수를 맞아, 코로나 시국에도 100분당 30만 원 받고 한다는 단기 과외 성교육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