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경제관료]
IMF 외환위기 후 공직 입문한 40대가 주류
디지털에 익숙하고, 외국어 구사 능력 갖춰
"90년대 사무관에 괴리" 70%· "신산업에 불안" 80%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공직 입문.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자란 X세대. 대학시절 처음 PC통신(인터넷)을 경험.’
대한민국의 경제정책을 만드는 경제부처 과장들은 자신들을 ‘X세대’라고 지칭한다. 대부분 1970년대 초반에 태어나 IMF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8년 전후에 공직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이들의 평균적인 모습과 세대적 특성, 능력 등을 알아보기 위해 조선비즈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주요 경제부처 과장(서기관)급 438명을 조사했다. 조사에는 ▲연령 ▲입직 경로 ▲남녀 성비 ▲출신 고교와 대학 ▲해외 유학 여부 등이 포함됐다.
◇평균 연령 49.5세 "우리는 서태지 세대"
조사결과 이들의 평균 연령은 49.5세로 집계됐다. 출생년도로 보면 1971~1973년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 대학입시가 수능으로 바뀌기 직전 학력고사 세대의 막내들이다. 행정고시 기수는 41~46회에 해당된다. 초임 과장들은 수능 세대인 1970년대 중후반 출생자들도 있다. 승진이 빠른 일부 부처는 행시 50회 안팎의 1980년대 초반생(生) 과장도 간혹 있다.
이들은 보통 X세대로 불린다. 이 이름은 이전의 세대들과는 분명히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마땅히 한마디로 정의할 용어가 없다는 의미로 캐나다 작가 더글러스 쿠플랜드가 소설에서 언급한 이후 널리 퍼졌다. ‘586’(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인 행정고시 30회대 기수 선배들과 달리 물질적 풍요로움과 풍성한 대중문화 기반을 누리며 성장했다. 개성이 강한 과장 중에는 40대 후반 나이에도, 20~30대가 주로 입는 르꼬끄 스포르티브(Le Coq Sportif·프랑스 스포츠 용품 제조업체) 등의 브랜드 의류를 입거나 스니커즈를 신기도 한다.
한 경제부처 과장은 "우리 세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뉴 키즈 온 더 블록’ 같은 팝 음악이나 서태지 랩을 들으며 지냈고, 문화적으로 80년대 학번과 다른 부분이 많다"며 "공무원 생활 시작 후에는 공동체 의식이 적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선배들에게 혼도 많이 났다"고 했다.
경제부처 과장급 간부들은 디지털 문화를 처음 접한 세대이기도 하다. 하이텔(한국통신), 천리안(데이콤) 등 PC통신을 사용하며 청년기부터 디지털 문화에 눈을 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과도기를 겪은 세대인 셈이다. 한 경제부처의 고참 사무관은 "지금의 과장급 공무원은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의 중간에 낀 세대로 볼 수 있다"며 "어린 시절에는 개인주의적인 신세대였지만 어느새 신입 직원들에게는 구세대적으로 느껴지는 사람이 된 것"이라고 했다.
조선비즈 설문조사를 봐도, 과장들은 70% 이상이 ‘‘90년대생 사무관들과 괴리감을 느낀다’고 응답했고, 80% 가량은 신산업 관련 언론보도와 보고서를 읽으면서 사회 변화에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응답했다.
◇초임 땐 IMF환란, 고참 땐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
대부분의 과장급 간부들이 공유하고 있는 경험 중 하나는 1998년에 발생한 IMF외환위기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정기 인사를 통해 주요 정책을 끌고가는 총괄과장직에 행시 42, 43회를 앉혔다. 다른 부처들도 비슷하다. 이들은 IMF외환위기가 터진 1998년 이후에 부처에 입직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사무관 생활을 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고참 사무관 또는 국 총괄 계장(서기관급)으로 위기 대응 실무 작업을 했다. 한 경제부처 과장은 "사무관 시절에 IMF 환란을 겪어 많이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위기 상황에서 공무원으로서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IMF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9년에 입직한 행시 42, 43회 과장들은 위기로 인한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겪었다. 행시 합격 수습 사무관들은 중앙공무원연수 과정에서 해외 각지로 2주일 정도의 연수 기회가 제공됐는데 IMF외환위기 이후 1999년까지는 이 프로그램이 중단됐다. 당시 연수를 받던 한 과장급 공무원은 "내심 해외연수를 기대 했는데 섭섭한 마음이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과장급 공무원들의 입직 경로는 행정고시 출신이 주를 이뤘다. 438명의 조사대상 중 225명(51.3%)이 행시를 거쳐 공무원이 됐다. 7급 공채(85명·19.4%) 등 행시 이외의 방법으로 입직한 경우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석·박사 학위를 소지한 사람도 255명(58.2%)에 달했다. 공무원 직무 연수로 해외에서 유학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제부처 과장의 60% 이상은 공직을 수행하면서 쌓은 경력이 정책 수행 및 자신의 향후 진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경제부처의 한 국장은 "지금 과장급 공무원들은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문화를 접해 인터넷을 통한 정보 습득 능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 또 외국어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많아 이런 능력을 활용하면 세계의 다양한 정책을 살펴보고 정보를 취합해 과거 선배들보다 훌륭한 정책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한편 공직사회의 남성 편중 현상은 여전했다. 전체 조사대상의 87.6%(384명)는 남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