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쇼핑몰에서 휴대폰케이스‧가방 등을 판매하는 김모(28)씨는 올 2월 송장(Invoice) 프로그램을 열었다가 ‘택배운임 현실화 협조 요청’이라는 공지를 확인했다. 택배업체로 이용 중인 CJ대한통운(000120)에서 택배 운임을 인상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달부터 김씨가 CJ대한통운에 내는 배송비는 가로‧세로 80㎝ 상자 기준으로 건당 2500원에서 3000원으로 20%가 올랐다. 제조 공장에서 물건을 받을 때 이용하는 한진(002320)배송비도 건당 2500원에서 2700원으로 8% 인상됐다.
국내 1위 택배회사인 CJ대한통운이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택배비 인상 움직임이 중소택배업체로까지 확산되는 분위기다. 택배사들은 택배비가 오른 것에 대해 ‘인상’이 아니라 ‘정상화’라고 표현한다. 그동안 출혈 경쟁으로 지나치게 낮은 운임을 받았다는 것이다.
국내 택배 시장이 CJ대한통운을 포함한 상위 5개사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택배사의 가격 협상력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택배기사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과 최저임금 상승 등도 택배비 인상에 대한 명분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1991년 국내 택배업 도입 이후 28년 만에 처음으로 택배비 인상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 CJ대한통운 일부 화주 이탈에도 운임 인상 추진…롯데‧한진도 동참
5일 택배업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올 1분기(1~3월) 물량 등 가격 요소와 연동한 판가체계를 바꾸면서 대리점을 통해 화주에게 요금 인상을 알렸다. 김씨처럼 택배비 인상을 받아들인 화주도 있지만, 일부 화주는 반발해 CJ대한통운 물량을 다른 곳으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CJ대한통운측은 아직 1분기 실적 정산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물량 감소 여부 등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박광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CJ대한통운은 택배 운임이 경쟁사 대비 여전히 낮지만, 가격 차이가 줄어들면서 일부 화주로부터 물량 확보가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며 "택배 판가 인상에 따른 물량 증가율 둔화는 올해 내내 지속될 전망"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부 화주 이탈에도 불구하고 CJ대한통운은 운임 인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택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물량 확보에도 문제가 없다. 박근태 CJ대한통운 대표는 지난달 25일 2019년 정기 주주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택배비 추가 인상 가능성을 언급했다.
국내 택배 2‧3위업체인 롯데글로벌로지스와 한진은 CJ대한통운의 화주 이탈로 반사효과를 체감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 등 경쟁사들은 자사 물량 처리에도 바쁜 상황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 관계자는 "택배 물량은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지난 1분기에 눈에 띌 정도로 물량이 급증하지 않았다"고 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와 한진 등은 CJ대한통운의 택배비 인상 성과를 지켜본 뒤 본격적으로 택배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 택배비 상승세 전환 원년…도미노 인상 움직임도
택배업계는 올해 택배비가 오름세로 상승 전환하는 원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택배 시장은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빠르게 성장했지만, 업체간 출혈 경쟁으로 택배비는 줄곧 떨어졌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택배물량은 25억4300만개로 2017년(23억1946만개) 대비 9.6% 늘었다. 하지만 1개당 평균단가는 2248원에서 2229원으로 0.8% 줄었다. 2229원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
택배 영업이익률은 1~2% 수준으로 서비스업 평균 영업이익률(4~5%)보다 낮다. 지난해 CJ대한통운과 한진의 택배 부문 영업이익률은 각각 2%와 2.1% 수준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197억원의 적자를 냈다. 택배업계에서는 최저임금 상승과 물류시설 투자 등으로 고정비 부담이 늘자 출혈 경쟁을 중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향후 택배비 인상 도미노가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형 유통업체는 물량이 많아 택배비 인상 폭을 줄일 수 있지만, 물량이 많지 않은 중소 유통업체는 택배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 상황이다. 일부 온라인 쇼핑몰은 CJ대한통운 등 택배사 운임 인상에 따라 배송비를 500~1500원 올리고 있다. 결국 전반적인 배송비 상승과 함께 소비자물가도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시장 점유율이 50%에 육박하는 CJ대한통운이 운임 인상에 성공할 경우 다른 업체들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