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뉴욕연준, 英 영란은행도 대형 미술 컬렉터
한국서양화에서 환상적 작풍을 추구했던 박항섭(1923~1979) 화백의 ‘포도원의 하루’, 물고기·새·꽃을 소재로 수묵화와 세필채색화를 그렸던 조충현(1917∼1982) 화백의 ‘우중구압’. 모두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맥을 보여주는 대표 작품이다.
이 그림 모두 한국은행이 올해 개최하는 ‘한국은행 소장 미술 명품’ 전시회에 소개된다. 한은은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2층 한은 갤러리에서 17일부터 세 차례 연속 한은이 소장한 작품 88점을 연속 전시하는 기획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또 한은이 소장한 미술품 1000여 점 중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사에서 큰 업적을 남긴 주요작가 100인의 작품 100점을 엄선한 도록도 발간한다.
한은이 1300여점이 넘는 미술작품을 소장한 대형 컬렉터라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한은은 한국화 600여점, 서양화 400여점, 서예 200여점, 조각품 50여점 등 1300여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보험료 산정을 위해 2012년 처음 감정을 받았는데 장부상 취득액은 40억원, 평가액은 60억원 정도였다. 이 작품들이 실제 경매에서 판매된다면 그 가치는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1950~1970년대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는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사회 혼란으로 작가들의 창작여건을 뒷받침하는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공공 컬렉터의 역할이 절실했다”며 “한은은 1950년 설립 당시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입상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수집해 지금 1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은은 이렇게 수집한 작품을 2000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를 통해 처음 일반에 선보였다. 2002년에는 화폐박물관 내 상설전시장인 한은갤러리를 마련했고, 30여 차례의 기획전을 개최했다. 2013년부터는 ‘신인작가 공모전’을 개최해 신인작가들의 창작활동도 지원하고 있다.
한은의 소장품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은 한은이 삼성본관으로 이사하기 전 본관 1층 로비에 걸어놓았던 ‘봄의 가락’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천재 화가’라고 불리던 김인승(1910~2001) 화백의 작품이다. 첼로 연주를 듣는 사람들을 대형 캔버스 두 폭에 담았는데, 전문가들은 그림 속 인물들이 귀 기울이는 첼로 연주가 실제 들려오는 듯하다는 호평을 내놓기도 한다. 일반인이 한은 내부에 접근하기 쉽지 않았던 탓에 그동안 이 작품은 일반에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한은뿐 아니라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은 많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미국 뉴욕연방준비은행과 영국 영란은행은 많은 미술품을 소장하고,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이들 은행이 소장한 미술품은 중앙은행의 품격을 높여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자산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