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부자 된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 정서 적대적
소유에 상응하는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

‘결혼시장’이라는 말은 신랑 신부의 값어치가 경제력과 배경에 따라 매겨지는 세태를 통속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중국의 결혼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신랑감을 일컬어 ‘고부수’라고 한다. 고(高)는 키가 커야 한다는 의미이다. 부(富)는 돈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帅)는 잘 생기면 좋다는 것이다.

거꾸로 중국 결혼시장에서 인기가 없는 남성은 ‘궁좌추’라고 한다. 궁(穷)은 가난하다는 말이다. 좌(矬)는 체격이 왜소하다는 뜻이다. 추(丑)는 인물이 변변하지 못하다는 의미이다. 아직 남아 선호의 인식이 많이 있어서 가뜩이나 결혼 적령기 인구 구조의 성비가 남초인 중국 상황에, 궁좌추 총각은 결혼 상대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비자발적인 미혼 상태의 남성을 일컬어 잉남(剩男)이라고 한다. 남아도는 남자라는 뜻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중국 결혼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여성의 조건이라고 하는 것이 ‘백부미’이다. 백(白)은 흰 피부를 뜻한다. 부(富)는 돈이 많으면 좋다는 것이다. 미(美)는 예뻐야 한다는 것이다. 성격 좋다, 학식이 있다 등등은 쏙 빠져있다. 선호하는 배우자의 조건으로 남녀 할 것 없이 부(富)를 꼽고, 노골적인 유행어로 만들어져 회자되는 곳이 중국이다.

중국 결혼식에 언젠가부터 등장한 혼례차 대열(婚礼车队). 꽃으로 장식한 신랑신부의 웨딩카를 필두로 하객용의 수십대 차량을 동원한다. 졸부인 토호들은 롤스로이스, 벤틀리, 람보르기니, 페라리등 외제차로 부를 과시한다.

집안의 배경이 좋아서 정관계에 진출하는 2세들을 관이대(官二代), 중공(中共) 원로의 자녀들을 홍이대(红二代), 막대한 부를 물려받는 2세들을 부이대(富二代), 스타(명성∙明星)의 자녀로 손쉽게 인기를 얻는 2세들의 경우를 성이대(星二代)라고 했다. 반면에 가난을 대물림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빈이대(贫二代)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아예 상승의 사다리와 거기에 도전하는 계층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평이대(拼二代)라고 이름 붙여진 부류가 여기에 해당한다. 평(拼)이라는 말을 한국어로 바꿔보면 ‘목숨걸고 하기’, ‘다걸기’ 정도가 될텐데, ‘빈이대’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창업등을 통해서 필사적으로 큰 성공을 이루어 내려는 청춘들을 표현한 말이다.

우리말에서 백수는 빈둥거리며 놀고 먹는 사람으로 통용되는데 중국어로 백수(白手)는 빈손과 맨주먹이라는 뜻이고, 빈손으로부터 출발해 자신의 노력만으로 출세하여 집안을 일으킨 것을 백수기가(白手起家)라고 한다. 한국어의 자수성가와 비슷한 상황이라 할 만하다. 빈손과 맨주먹을 적수공권(赤手空拳)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같다.

하포화(荷包花)의 원산지는 남미이다. 중국에 들어온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재물을 상징한다고 해서 중국인들이 좋아한다. 원보화(元宝花)로도 불리운다.

그런데 어려운 집안 출신이 온갖 고난을 각오하며 ‘목숨걸고 다걸어 성공에 도전하기’를 결행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한편 중국의 배경 좋은 집안 2세들은 어려움 없이 자랐기에 고난을 자청할 리가 없고, 그러한 훈육을 하는 시대도 아니다. 오랫동안 부를 숭상(숭부∙崇富)하는 태도와 정신세계를 이어온 중국이지만, 자녀 교육을 할 때에는 일부러라도 고생과 어려움을 겪게하고 이를 극복하는 경험을 하는 편이 좋은 훈육이라는 것이 중국인들의 생각이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우리말에 해당하는 중국어 ‘끽고(吃苦)’가 내포한 의미이다. ‘고생을 먹는다’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제 이런 풍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부와 환락의 과시에 몰두하는 2세들의 뉴스가 인터넷에 흘러 다닌다.

이렇게 부를 과시하는 현부(炫富) 풍조에 대해 여타 계층의 민심이 곱지 않다. 이러한 심리를 표현한 단어가 수부(仇富)이다. ‘부자를 원수로 삼는다, 부자를 증오하다’로 번역할 수 있는데, 중국 여론에서 요즘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원나라 말에서 명나라 초에 쓰여졌다 하고 송나라의 시대상을 묘사한 수호전이 담고 있는 ‘부자를 죽여 가난을 구제한다(살부제빈∙杀富济贫)’와 맥이 닿는 정서라 아니할 수 없다.

강소성 무석에 있는 수호전 촬영장. 소설에는 양산박(梁山泊)에 모여든 송강, 무송, 노지심등이 부자의 재산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눠준다는 내용이 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아버지 등소평은 중국에 다함께 먹는 큰솥밥(大锅饭)을 채우고 이상적인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경제를 일으켜야 하고,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일부분의 사람이 먼저 부자가 될 수 밖에 없다(一部分人先富起来)’는 ‘선부론(先富论)’을 주창했었다.

그런데 먼저 부자가 된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 정서가 적대적으로 흘러가는 것과 관련하여 당국의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부동산등 각종 이권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일부 그룹(중국어로 집단)의 총수에 대해 중국 당국이 ‘공권력을 통한 사유재산의 몰수’에 가까운 조치들을 하고 있는 것이 이와 무관치 않다. 표면적인 발표로는 금융을 통한 과도한 자금조달과 무분별한 국내외 비관련 다각화, 해외재산 도피의혹 등이 있고, 정치적인 노림수도 있겠지만, 2세를 포함한 당사자들의 빗나간 사생활과 이것으로 인한 부정적인 여론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중국어로 위부불인(为富不仁)이라 하면 부를 위해 인(仁)을 포기하는 것, 즉 정당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를 말한다. 이제는 부의 획득 과정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공유 가치를 창출’하는 데에도 그 소유에 상응하는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중국은 등소평이 말했던 ‘먼저 부자가 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추앙과 담론들이 엄청나게 많아지고 있다. 이것은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양갈래 길을 동시에 선택했던 중국인들의 숙명이다. 그리고 우리 바로 이웃 14억의 현실이다.

◆ 필자 오강돈은…

《중국시장과 소비자》(쌤앤파커스, 2013) 저자. (주)제일기획에 입사하여 하이트맥주, GM, CJ 국내마케팅 등 다수의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이후 디자인회사, IT투자회사 경영의 경력을 거쳐 제일기획에 재입사하여 삼성휴대폰 글로벌마케팅 프로젝트 등을 집행했고, 상하이/키예프 법인장을 지냈다. 화장품 기업의 중국 생산 거점을 만들고 판매, 사업을 총괄했다. 한중마케팅(주)를 창립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졸업, 노스웨스턴대 연수, 상하이외대 매체전파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