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여당인 공화당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각) 상속세 폐지 내용을 담은 세제 개혁안을 발표했다. 일자리를 보호하고 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속세를 폐지하면서 “사업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일자리가 미국으로 넘쳐들게 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한국은 반대로 가고 있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26%의 두 배에 달한다. 또 최대주주의 주식을 일반 평가액에 할증액을 더한 금액으로 평가해 실제 최고 세율은 65%로 일본보다 높다. 앞으로 기업들의 상속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상속증여세 신고세액공제가 현재 7%에서 내년 5%, 2019년 이후 3%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축소되면서 기업들의 상속세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며 “여기에 대주주의 주식 양도차익 과세 확대,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 과세(공정과세) 강화 움직임까지 겹쳐 기업지배구조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성그룹의 상속세 부담이 10조2000억원에서 10조6000억원으로, 현대차그룹은 상속세 부담은 2조8000억원에서 2조9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 세계 각국 상속세 부담 낮춰…캐나다·스웨덴·노르웨이는 폐지

세계 각국은 점차 상속세 부담을 낮추거나 폐지하고 있다. 과도한 상속세는 오히려 국부유출, 해외 도피 등을 일으켜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1972년 캐나다를 시작으로, 호주, 이스라엘, 뉴질랜드가 상속세를 폐지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포르투갈, 슬로바키아, 멕시코, 스웨덴, 오스트리아, 체코, 노르웨이가 상속세를 없앴다. 중국은 상속세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피상속인이 부를 축적하는 단계에서 이미 세금을 냈기 때문에 사후에 다시 과세할 경우 이것을 ‘이중 과세’로 보는 것이다.

상속세율을 10% 이하로 소득세율보다 낮게 부과하는 국가로는 그리스, 터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폴란드, 이탈리아, 스위스, 브라질, 대만 등이 있다. 영국, 네덜란드 등은 상속세율이 10%를 초과하지만, 소득세율보다 낮게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는 상속세와 소득세와의 형평을 추구한다는 관점에서 상속세율과 소득세율을 동일하게 유지한다.

한국은 일본, 헝가리와 함께 부의 이전을 불로소득으로 간주하고 상속세율을 소득세율보다 높게 유지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상속증여세는 전쟁비용 충당 등의 일시적 세수확보를 위한 목적으로 부과됐는데 세수확보 기능은 미미한 반면 조세회피 유인은 높아 기업, 경제 활동을 제약하는 측면이 있다”며 “스웨덴의 경우 2005년 상속·증여세를 모두 폐지한 후 조세회피 유인은 감소하고 기업의 투자를 쉽게 해줘 기업 경쟁력 향상, 가계 순저축률 증가, 경제성장에 도움을 줬다”고 했다.

◆ 상속세 납부 방식·절차 변화 필요성도

상속세 찬성론자들은 상속권을 국가가 부여한 제도로 인식하고 불로소득에 따른 부의 집중
을 막고 기회균등을 위해 상속권을 박탈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상속을 인간의 기본 권리로 인식하며 상속세는 자본의 해외 유출을 촉진하고 투자를 위축시켜 하향평준화만을 초래
한다고 주장한다. 또 상속세율을 낮추기 어렵다면 납부 방법과 절차라도 변화를 줘야한다고 말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속세 자체를 낮추기는 힘들다”면서도 “세금 조달 또한 국민의 생각이 중요한데, 현 상황에서 상속세를 낮추는 것은 국민의 호응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가업승계의 경우 납세를 유예 시켜주든지, 납세 방법을 주식으로 대체해주든지 상속 과정에서 경영권이 이전되지 않도록 제도가 유연해질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상속세를 준비하지 못해서 회사를 매각한 경우도 있다. 세계 1위 손톱깎이 제조사 ‘쓰리세븐’의 창업자는 2008년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당시 유족들은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해 회사 지분을 처분해야 했고 경영권을 빼앗겼다. 경영권 승계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으면서 쓰리세븐의 2009년 매출은 2001년 매출의 3분의1로 급감했다.

송원근 한경연 부원장은 "우리나라는 상속세율도 높고, 경우에 따라 할증과세마저 중과되는 상황"이라며 "투자와 같은 기업활동 제약 등을 고려하면 상속증여세를 폐지하고 이를 자본이득세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본이득과세는 가령 아버지가 30억원을 주고 산 빌딩이 50억원이 됐을 때 자식에게 물려주는 경우 매입액을 뺀 20억원에 대해서만 세금을 물리는 제도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상속세를 장기간 나눠 납부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BMW다. 30여년간 BMW그룹의 최대주주 자리를 지켜온 여성부호 요한나 콴트(Johanna Quandt)는 승계를 위한 유한합자회사 형태의 BMW 지분관리회사를 설립했다. 이로써 그는 두 자녀에게 BMW 지분을 직접 증여하지 않고 지분관리회사의 지분을 자녀에게 6년에 걸쳐 비공개적으로 증여할 수 있었다. 이는 상속증여세 부담을 크게 줄여주고 증여세 납부액을 수년에 걸쳐 분산시킬 수 있었다. 지분에 대한 매각 없이 상속증여세를 납부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한세대가 번 돈을 다음 세대로 넘길 때 세금이 최대 65%인데, 이런 나라가 없다”며 “우리나라가 비현실적인 상속세를 가지고 있어서 편법상속 문제가 기업마다 논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속세 제도가 고쳐지지 않는 한 애매한 상속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