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하필이면! 하필이면 왜! 수많은 군주 중에 원술이란 말이냐!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삼국지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지만 뒤이어 처한 상황은 나로 하여금 심각한 인상을 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는 몰라도 하필 삼국지에 등장하는 군주 중에서도 성격은 막장이요, 후에 황제를 참칭하다가 조조와 유비, 손책, 여포 등에게 패하는 원술에게 임관해야 한다니 이거 묏자리부터 봐놔야 하는지 모르겠다...’
웹소설 작가 조경래씨가 쓴 ‘같은 꿈을 꾸다 in 삼국지’ 3화의 한 대목이다. 평범한 주인공이 삼국지를 읽다가 잠이 든 후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당시 시대로 타임워프(시간 이동)해 기존 삼국지와는 다른 새로운 사건과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내용이다. 2011년 2월부터 연재가 시작된 이 웹소설은 완결된 2013년 10월까지 총 510편이 연재됐고, 누적 조회수 2155만건을 기록했다. 2014년에는 당시 웹소설로서는 이례적으로 종이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지난달 21일 서울 구로구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웹소설 업체 조아라에서 만난 조경래 작가는 “웹소설 독자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즐거움이나 짜릿함을 얻기 위해 웹소설을 읽기 때문에 일반 문학소설이 아닌 만화나 영화 등이 경쟁 콘텐츠가 된다”면서 “독자들의 반응에 따라 내용을 곧바로 수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웹소설은 소비자 요구에 맞게 신제품을 생산하는 공산품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사용률이 높아지면서 웹툰과 웹소설 같은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한 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웹소설은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도 간단히 즐길 수 있어 관련 시장 규모는 매년 커지고 있다.
웹소설은 연령이나 자격에 상관 없이 플랫폼에 자신의 창작물을 올리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다. 종이책과는 달리 웹소설을 올린 후 곧바로 독자들의 반응을 얻을 수 있고, 독자 수에 따라 수입까지도 올릴 수 있다. 많게는 한달에 1000만원 이상의 수입도 올릴 수 있고, 부업으로도 활동할 수 있어 웹소설 작가는 모바일 시대의 새로운 직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 누구나 즐기는 ‘스낵컬처’ 웹소설…올해 1000억원 이상 시장 성장
웹소설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서비스되는 문학 콘텐츠를 말한다. 판타지와 무협, 공포, 로맨스, 추리 등 전통 문학과는 거리가 먼 장르 소설이 주를 이룬다. 과거에는 사이버 소설이나 인터넷 연재소설 등으로도 불렸지만, 네이버가 2013년 1월 ‘네이버 웹소설’이라는 명칭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웹소설로 불리고 있다.
웹소설은 문장과 문단이 짧아 영화나 만화처럼 눈으로 보고 바로 이해하는 ‘즉시성’이라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웹소설은 과자를 먹듯이 짧은 시간 안에 쉽게 즐길 수 있는 ‘스낵컬처’로 분류되기도 한다.
조경래 작가는 “순수 문학이 레스토랑이라면 웹소설은 분식점과 같다”라면서 “누구나 부담 없이 먹는 떡볶이처럼 웹소설은 진입장벽이 가장 낮은 문화콘텐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웹소설 시장의 규모는 2010년 이후 해마다 약 2배씩 커지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13년 100억원 수준이었던 웹소설 시장 규모는 2014년 200억으로 2배 성장했고, 2015년에는 400억 대에 진입했다.
김수량 조아라 전략기획팀 차장은 “웹소설 플랫폼들의 매출액을 살펴보면 작년 웹소설 시장 규모가 약 13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면서 “올해부터는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었지만, 업체들의 매출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 평범한 직장인에서 전업 웹소설 작가로 변신…“월 1000만원 이상 수입”
조경래 작가는 2011년부터 전업 웹소설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조 작가의 대표 작품은 ‘불꽃처럼’이나 ‘우리의 마음은 남쪽으로 향한다’ 등이다. 역사적 지식을 기반으로 기존 역사적 사건에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미한 웹소설을 쓰고 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조 작가는 자신이 역사적 사실을 접하며 들었던 생각들을 종합해 웹소설로 만들고 있다.
조 작가가 처음부터 웹소설 작가였던 것은 아니다. 조 작가는 플라스틱 신용카드를 만들어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지방으로 영업을 자주 다녀야 했던 조 작가는 이동하며 남는 시간 동안 인터넷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조 작가는 “‘몇 명이나 내 글을 읽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취미 삼아 소설 몇 편을 올렸는데 의외로 댓글이 많이 달렸고 계속 연재해달라는 요청도 받았다”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자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높아져 웹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2010년부터 약 1년 동안은 웹소설 연재와 회사 생활을 함께했다. 그는 “무료 연재를 하다가 유료 연재로 전환하면서 수입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라며 “전업 웹소설 작가로 활동하는 것을 고민하다 회사 월급의 2배가 되는 날 그만두자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2011년 8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웹소설 작가가 되었다. 조 작가는 “현재 한달에 10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조 작가의 웹소설 쓰기 작업은 오전 9시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 위치한 작업실로 출근하자마자 시작된다. 조 작가는 우선 전날 연재된 작품에 달린 독자들의 댓글과 조회수 등을 꼼꼼하게 살핀다. 이야기 전개 방향에 대한 제안이나, 재미없었던 부분 등 웹소설에 대한 반응을 모두 메모한다. 독자 피드백을 토대로 당일 작업할 내용을 구상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조 작가는 “독자들의 반응에 따라 원래 구상했던 내용과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라며 “작가 소신대로 이야기를 밀고 나갈 때도 있지만, 독자들의 반응을 고려해 쓰면 더 좋은 반응이 나오기 때문에 매일 피드백을 참고한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다음날 연재할 작품을 모두 쓰고 오후 5시쯤 퇴근한다. 조 작가는 “출퇴근 시간을 정해 일반 직장인처럼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작업을 하고 있다”라며 “정해진 시간에 웹소설을 연재하는 것이 독자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이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주 6회 약 6000자 분량의 웹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 “업계 매출 매년 성장세”...작가마다 수입 편차 큰 것은 담점
웹소설 플랫폼 업체 수익은 유료연재, 전자책, 서적에서 나온다. 유료연재의 경우 플랫폼마다 가격이나 기간 등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편당 결제 시스템과 정액제 서비스로 구성된다. 조아라에서는 소설 한편당 100원을 주고 사 읽거나, 2400원을 내고 24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웹소설을 볼 수 있다. 완결된 웹소설은 전자책이나 서적으로 출간해 부수적인 수익을 올린다.
조아라의 매출액은 2014년 72억원, 2015년 125억원, 작년 162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약 18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웹소설 플랫폼인 북팔의 매출액은 지난해 약 80억원, 문피아는 약 190억원을 기록했다.
웹소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 조회수에 따라 수입을 올린다. 플랫폼 업체마다 작가 수익 배분율은 차이를 보이지만, 보통 유료 결제분의 40~60%가 작가에게 돌아간다. 미리 보기 횟수가 많으면 유료 연재 작품으로 전환되고, 작품을 완결한 작가는 돈을 더 받을 수 있다. 인기 작가의 경우 한달에 1000만원 이상의 수입도 올릴 수 있다. 전자책은 작품의 인기도에 따라 판매액의 10~25%, 종이책은 10~15% 정도가 작가에게 지급된다.
웹소설 작가들의 수입은 작품 인기도에 따라 편차가 큰 편이다. 한달에 100만원도 못버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한달에 1000만원 이상을 버는 억대 연봉 작가도 있다. 김수량 차장은 “조아라 내 연봉 1억 이상 작가는 10명 정도 있다”며 “매달 작품을 얼마나 써서 올리느냐에 따라서 작가들의 수입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작가마다 수입 편차가 크다 보니 최소 생계비를 보장해주는 웹소설 플랫폼도 있다. 조아라는 조회수 상위 작가 120명에게 최소 월 100만원을 보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조회수에 따른 수익이 80만원이라면 20만원을 조아라가 보태 100만원을 수익으로 맞춰준다. 김 차장은 “전업 웹소설 작가들에게는 부족한 수입이겠지만, 웹소설 작가도 월급처럼 일정한 수입을 올릴 수 있어 엄연한 직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 “성실함·독특한 소재·소통 능력이 성공 비결”…누구나 도전 가능한 웹소설 작가
웹소설 작가는 기존 순수 문학 작가처럼 탁월한 글쓰기 재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다.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웹소설 작가에 도전할 만하다. 독자들의 이목을 끌만한 소재를 가지고 있고, 간결하고 짧은 문장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웹소설 작가 커뮤니티 등 온라인상에서는 ‘웹소설 십계명’ 등의 지침이 회자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모바일에서 읽기 쉽도록 문장을 최대한 짧게 써라 ▲서술형 문장보다는 대화를 많이 삽입해라 ▲다음 편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할 만 한 부분에서 한편을 끝내라 ▲ 영화 시나리오와 유사하게 써라 ▲독자들은 화면을 내렸다가 다시 위로 올리는 것을 귀찮아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등이다.
조경래 작가는 “모바일 화면에서 텍스트를 즐기는 독자들의 시선에 맞춰서 글쓰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문학 소설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액자식 구성’ 등 전개가 복잡한 웹소설은 독자들에게 외면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웹소설은 플랫폼이 온라인인 만큼 시간 제약이 없고, 작업 공간을 따로 두지 않아도 된다. 집이나 카페, 심지어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면서도 글을 써 올릴 수 있다. 김수량 차장은 “물리적인 제약이 없기 때문에 다른 직업들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다”며 “취미 삼아 글을 올리며 웹소설 작가를 부업으로 삼을 수도 있고, 일정 수준 수입을 올리기 시작하면 전업 작가로도 활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웹소설 작가는 무엇보다 성실함을 갖춰야 한다. 연재 공백이 길수록 독자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조경래 작가는 “조회수가 아무리 높은 작품이더라도 하루 이틀 연재가 늦어지면 독자 수가 확 줄어든다”면서 “일정 분량을 독자와 약속한 시각마다 올릴 수 있는 성실함과 꾸준함을 갖춰야 웹소설 작가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첫 작품이 인기가 없더라도 자신의 작품을 리메이크해 완성도를 높여가면서 독자들의 호응을 얻는 방법도 있다. 조 작가는 “웹소설 플랫폼은 지면 제약이 없다는 장점이 있어 자신의 작품을 독자 반응을 얻을 때까지 다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과의 소통 능력도 필요한 덕목이다. 웹소설은 작가와 독자가 직접 연결된다. 일반 문학 작품의 경우 책이라는 형태로 완성된 이후에야 독자를 만나기 때문에 작가가 독자와 소통할 기회가 적다. 그러나 웹소설은 한편을 올리면 곧바로 독자의 댓글을 확인할 수 있다. 독자가 적극적으로 작품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이다. 김수량 차장은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인기 캐릭터의 비중을 높이거나 일부 에피소드의 내용을 바로 수정할 수 있다”며 “독자들과 소통을 잘 할수록 작가 인기도 올라간다”고 말했다.
인기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판타지 장르와 같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내용일 경우 독자들이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웹소설 플랫폼의 매출 상위 작품들은 판타지나 연애, 역사판타지 물이 주를 이루고 있다. 조 작가는 “독자들은 웹소설 속 주인공들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느끼려 한다”라며 “웹소설을 읽는 순간만큼은 팍팍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참신한 이야기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웹소설은 영화나 드라마, 게임 등의 문화 콘텐츠로 활용되면서 웹소설 작가들의 활동 영역도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KBS2에서 방영된 인기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은 동명의 웹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김수량 차장은 “웹소설은 전개가 빠르고 인물들의 행동에 따라 사건이 진행되는 등 이야기 흐름이 역동적이라 영상화를 하는데 다른 문학 작품보다 편하다”라면서 “원소스 멀티유스(OSMU)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