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 산업혁명 이후로 서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해 왔다. 일본의 탈아론(脫亞論)을 시작으로 세계 대부분 나라는 서구식 근대화를 지향해 왔다. 2차 세계대전 전후로 사회주의 국가들이 한때 여럿 생겨나기도 했으나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대부분 서구 중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편입됐다.
많은 나라들이 서구를 지향해 온 것은 그들이 가진 경제력과 군사력 때문만은 아니다. 자유, 민주, 평등, 박애, 인권, 개방, 관용, 포용 등 서구가 추구했던 가치들이 인류 보편적 가치로 인정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관용과 개방을 통한 포용’은 로마, 몽골, 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 초강대국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구적 보편가치는 불과 50여년 전만 해도 지금과 많이 달랐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일상적이었으며 흑인은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동성애자는 괴물 취급을 받았다.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1960~1970년대 서구의 신좌파운동을 거치면서다. 당시 반전∙반핵운동, 여성운동, 흑인인권운동 등이 있었다. 서구에서 혁명에 실패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했듯이 이들 운동세력이 몰락했지만 그 정신은 이어졌다.
미국에서는 1980~1990년대 대학가와 시민사회, 정치권을 중심으로 인종, 성별, 민족, 종교 등에 대해 편견을 갖지 말고 그런 차별이 포함된 용어나 표현을 쓰지 말자는 사회운동이 벌어졌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이라고 하는 이런 흐름은 소수인종 우대정책, 낙태 허용과 같은 여성인권 보호정책, 동성결혼 허용 등으로 제도화되기도 했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이유 중 하나로 ‘정치적 올바름’의 과도함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 대도시 상당수가 쇼핑몰에서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대신 ‘해피 할러데이(Happy Holiday)’를 쓴다. 크리스마스를 인정하지 않는 무슬림을 배려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외에도 미국 상당수 중고등학교에서 다른 나라 국적 학생들이 있다는 이유로 미국 국기를 게양하지 않는 것, 술 배달을 거부한 무슬림 택배 기사를 해고한 회사가 종교탄압죄로 고소돼 엄청난 보상금을 지불한 것 등 사례가 있다. 이런 ‘정치적 올바름’의 과도함이 미국 백인들의 거부감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진보 성향인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올해 5월7일 ‘진보주의자들의 불관용에 대한 고백(A Cofession of Liberal Intolerance)’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우리 진보주의자들은 다양성에 대한 신념을 갖고 여성, 흑인, 라티노, 게이, 무슬림과 대화할 수 있다. 단 그들이 보수주의자가 아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교 내에서는 보수주의자이거나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거나 공화당 지지자들에게는 경멸의 눈초리가 쏟아진다고도 했다. 크리스토프는 칼럼에서 여러 연구자료를 보면 인문학 교수들 중 공화당 지지자들은 6~11%에 불과하고 사회과학 교수들 중에서도 7~9% 밖에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나마 과학 관련 학과나 경제학과는 숫자가 더 많다고 한다. 다양성을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이 오히려 편견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백인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지만 하지 못하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정치인이 등장했다. 인종 차별적인 발언과 여성 혐오적인 발언을 해대는 트럼프는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지난해 6월 트럼프 대선출마 선언식에서 그의 딸 이방카는 “아빠는 ‘정치적 올바름’과 정반대”라며 “자기가 생각하는 걸 말하고, 말하는 걸 생각한다”고 소개했다.
어쨌든 이번 트럼프 당선은 많은 미국인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정치적 위선’이라고 보고, 엘리트들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일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유럽에서는 난민 반대 여론이 높고 극우 정당이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일당독재를 하고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데 여전히 건재하다. 최근에는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 사범들에 대해 법적 절차 없는 즉결처분으로 인권 탄압이라는 국제적 오명을 썼지만 국민들의 지지율은 90%에 달한다. 서구적 보편가치는 더 이상 보편적 진리가 아닌 걸까.
트럼프든 두테르테든 중국이든… 그렇다고 ‘정치적 올바름’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인류 진보의 역사가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으로써, 인간 본성의 이기심을 이성으로 억누름으로써 이뤄낸 것 아닌가.
[데스크칼럼] 아! 트럼프① 대중민주주의의 위기 <2016. 11. 11>
[데스크칼럼] 아! 트럼프② 세계화의 위기 <2016.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