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시 결정 때까지 150만원에 다 진행해 드리고요, (회생 결정) 안 나면 수임료 돌려드려요.”

대학 졸업 3년차인 고모(29·서울)씨는 대학생 때 생활비와 학자금 목적으로 빌렸던 4000만원을 빚으로 떠안고 있었다. 졸업 직후 여러 일을 해봤지만 제대로 된 직장에서 일하진 못했다. 고민하던 그는 결국 ‘개인회생 브로커'에게 수수료로 150만원을 내고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고씨는 대형 일식집 관리인으로 취직해 월 250만원의 고정 수입으로 빚을 갚을 능력이 생겼다. 하지만 그는 월급을 은행 계좌가 아닌 현금으로 받고, 월 80만원만 받는다면서 법원을 속였다. 개시 이후 고씨는 월 상환금액 15만원만 내고 나머지 잔여 부채는 대부분 탕감받게 됐다.

고씨는 “대학생 때 진 빚을 갚는 것이 왠지 손해라고 생각한다”며 “개인회생에 들어가도 법적으로는 경제 활동에 아무런 불이익이 없어 차라리 회생하고 빚을 탕감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개인회생의 덫에 빠진 사람들

이진희 디자이너

법원이 진행하는 개인회생은 소득 대비 빚이 과도하게 많은 저소득계층을 대상으로 정부가 이자를 줄이고 원금도 탕감해주는 정책이다. 일상 생활이 힘들 정도로 빚 부담이 크고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유용한 사회복지제도다.

그런데 이를 악용해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충분히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브로커들을 통해 서류상 소득을 낮게 신고하는 등의 방법으로 개인회생을 신청하기도 한다.

지난해 법원에 신청된 개인회생 건수는 10만건이다. 전년 11만건에 비해 소폭 줄긴 했지만 2010년 이후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해마다 늘었다. 2010년 4만7000건이었던 신청건수는 이듬해 6만5000건으로 늘었고 다음해 9만건으로 급증했다.

문제는 고씨처럼 고정 소득이 있는 상황에도 개인회생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저축은행중앙회 등 개인 채권을 상대적으로 많이 들고 있는 2금융권은 지난해 국민신문고를 통해 개인회생 관련 광고를 제한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은행, 카드, 보험 등 1금융권을 제외한 나머지 업권에서는 소득이 있는 일부 금융 소비자의 개인회생 악용이 심각한 손해로 돌아온다”면서 “개인회생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갈수록 완화되고 있는 추세이기에 이 같은 제도를 악용하는 이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150만원이면 빚 탕감 개인회생…불법 브로커 기승

개인회생·파산 관련 전단지

개인회생 개시 결정이 나면 기존 채무를 최장 5년 동안 상환한 후 잔여 채무를 면책받을 수 있다. 또 개인회생을 받더라도 신용대출을 제외한 통상적인 금융거래를 할 수 있으며 회생 기록 또한 5년 뒤 삭제된다. 이 같은 이점 때문에 20~30대에서 개인회생을 하나의 재테크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통상 브로커를 통해 개인회생을 진행한다. 브로커들은 개인 사무실을 꾸리고 변호사 자격증을 빌린 뒤 통칭 사무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인회생 절차를 대리한다. 수임료는 100만원에서 150만원 안팎이다.

대전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빌려 개인회생 절차를 진행하는 브로커는 한 달 평균 10건에서 15건의 개인회생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신청 건수 중 80% 정도를 성공시키며 나머지는 불가 판정을 받아 다음 달에 다시 법원에 신청한다.

이 브로커는 “생활이 진짜 어려운 이들은 브로커 비용을 댈 수도 없다”며 “브로커를 통하는 이들은 대부분 고정 소득이 있는 가짜 신청일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법조계가 불법 브로커를 통해 개인회생을 진행하는 이들을 적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단속하고 있지만 적발 건수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법무법인 태우의 도태우 변호사는 “부적합한 개인회생 신청자를 걸러내기 위해 채무변제 제도 규정을 까다롭게 만들 경우 오히려 서민복지 제도 문턱을 높인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불법 브로커를 통해 진행되는 사례만 제대로 단속할 경우 실제 개인회생 등 채무변제 제도를 올바르게 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 회생
일정한 수입이 있는 채무자가 파산 위기에 처했을 때 법원이 강제로 채무를 조정해주는 제도다. 최대 5년간 매월 일정 금액을 갚으면 남은 채무는 탕감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