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다마라고 할까. 결국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7 생산이 중단되었다. 삼성전자는 전량 리콜이라는 사상 초유의 승부수까지 던지며 노트7을 지키려고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눈물을 머금고 노트7을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노트7을 버린다고 아직 ‘활화산’이 꺼진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는 집단소송이 기다리고 있고 스마트폰 외에도 세탁기 폭발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산 넘어 산’이라는 표현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번 노트7 사태를 보면 삼성답지 못한 미숙한 행동이 여러 측면에서 관찰된다.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스마트폰 폭발에 대한 미숙한 대응이다. 삼성전자가 전격적으로 리콜을 단행한 것은 옳았다.
문제는 리콜 선언 다음의 행동이다. 삼성은 폭발 원인이 배터리인가를 철저히 확인한 후, 즉 문제의 원인을 제거한 후에 생산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귀신에 쫓기듯 삼성은 교체용 제품 생산과 교환에 사활을 걸었다.
삼성전자는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난 조직이다. 예전의 삼성은 조직력이 강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업이었다. 이는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의 특징이기도 하다. 삼성은 이런 자신의 역량을 무기로 애플을 따라 잡았다. 애플보다 훨씬 짧은 리드타임(제품개발 기간)으로 애플보다 더 빠르게 신제품을 시장에 출시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었다. 리드타임이 짧아지면 제품 개발 조직에 엄청난 스트레스와 부하가 걸린다는 것은 초보자도 알 수 있다. 이런 시간 단축은 안정성 점검 등 핵심 체크포인트를 놓치게 했고 결국 스마트폰 발화라는 참사를 불렀다.
개발의 이슈는 가전사업부에도 있다. 미국에서의 세탁기 폭발이 문제 중 하나다. 이 사건으로 삼성은 미국 소비자안전위원회에서 경고를 받은 상태다. 이미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도 세탁기 폭발 사고가 200여건이나 발생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에어컨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1000건 넘게 제기되고 있다.
왜 이런 제품의 결함이 지금 시점에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인가. 지난 10여년간 삼성 이건희 회장이 역량을 집중한 것은 품질경영이었다. 이런 노력은 삼성전자가 글로벌 1등 기업으로 성장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난 이후 뭔가 조직 내 변화가 생기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금까지 품질이나 현장을 강조한 적이 없다. 어쩌면 품질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런 ‘당연’의 전제가 무너지면서 ‘승자의 저주’라 부를 수 있는 누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조직의 문제는 또 있다. 글로벌 기업답지 않게 국내외 이해당사자에 대한 대응과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달랐다. 미국 소비자가 항상 우선이었고, 한국 소비자는 뒷전이었다. 만일 미국에서 폭발 사건이 터지지 않고 한국에서만 터졌으면 그냥 소비자의 과실로 처리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교환된 스마트폰에서 또 사고가 터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정부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산업기술시험원으로부터 ‘외부 충격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의 결과를 얻었고,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내용을 보면 그 당사자가 블랙컨슈머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준다.
미국에서는 달랐다. 지난 5일 미국 캔터키주 루이스빌 국제공항에서 사우스웨스트 항공기 승객의 갤럭시 노트7이 폭발하자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는 발화 관련 재조사에 착수했고 결국 삼성전자는 생산을 포기한다.
아마 삼성은 갤럭시8이나 노트10과 같은 제품을 가능한 빨리 개발해 실패의 악몽에서 벗어나려고 할 것이다. 그것도 중요한 해법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조직의 재정비와 경영의 혁신이다. 개발 프로세스 혁신, 개발조직과 마케팅조직의 통합성 회복, 외부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재구축 등은 보다 본질적인 문제이고 결국 이는 경영의 혁신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위대한 기업은 항상 참담하게 실패한다. 도요타가 그랬고, 소니와 노키아도 그랬다. 삼성도 이런 운명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학습을 통해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는 있다. 도요타가 그랬다. 이제 삼성을 지켜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