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설계계약을 마치자마자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과 동경·오사카·쿠알라룸푸르·싱가포르로 열흘 동안 여행을 떠났어요.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이 회장과 저는 매일 어떤 건물을 지을지 얘기를 나눴고, 건물을 시민들에게 열어주자고 의기투합했죠. 사실 이전까지 사옥 건물의 로비는 시민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흥국생명빌딩을 통해 공중 공간(public space)에 새로운 가치를 불러 넣고 싶었다고 할까요.” (흥국생명빌딩 설계자 건축가 부대진)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있는 흥국생명빌딩은 여느 오피스 건물과 달리 시민들에게 친숙한 건물이다. 1층 로비는 다채로운 설치미술품을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열린 갤러리’로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지하에 있는 예술영화관 ‘씨네큐브’는 독립영화 애호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건물 3층에 있는 일주·선화갤러리에는 해마다 다양한 전시가 열린다.
◆ 시민들에게 개방한 '열린 로비'…다채로운 예술작품 눈길
2일 흥국생명빌딩을 찾았다. 사실 이 건물은 일반인들에겐 건물 자체보다 빌딩 앞 조형물로 더 유명한 지도 모르겠다. 높이 22m, 무게 5t짜리 대형 조형물 해머링맨(Hammering Man·망치질하는 사람)이 건물보다 더 눈길을 잡아 끌기 때문이다. 해머링맨은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1분 17초마다 한 번씩, 하루 660번을 쉬지 않고 망치를 휘두른다.
이 작품은 미국 조각가 조너선 보롭스키가 만든 것으로, 망치를 든 오른팔의 단순하고 반복적인 움직임은 노동의 숭고함과 현대인의 고독을 상징한다. 해머링맨은 독일, 스위스, 미국 등 여러 국가에 이어 세계에서 7번째로 흥국생명빌딩 앞에 세워졌는데, 몇몇 사람들은 흥국생명을 떠올릴 때 곧장 해머링맨부터 연상할 정도로 해머링맨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건물 로비(360도 사진 링크)로 들어서면 다양한 설치미술이 반겨준다. 천장에는 프리 일겐 작가가 설치한 모빌작품이 걸려 있고, 벽면에는 강익중 작가가 만든 설치미술이, 바닥에는 대형 바코드 타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로비뿐 아니라 에스컬레이터 옆이나 복도 가운데 등 각양각색의 설치미술이 건물에 가득 차 있어, 순간 이 건물이 대기업 사옥 빌딩이 아니라 미술관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지하로 내려가면 예술영화관 씨네큐브가 있다. 씨네큐브에서는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등 다양한 독립영화제가 열려, 영화 애호가들은 이곳을 ‘독립영화의 성지’라고도 부른다. 대형극장에선 볼 수 없는 독립·예술 다큐멘터리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영화관 씨네큐브를 짓는 데는 특히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건물을 설계한 부대진 건축가는 “지하에 미술관을 지으려고 했는데, 건축주(이호진 회장)가 영화관을 꼭 만들고 싶다고 해서 영화관을 지하에 만들고, 미술관은 3층에 짓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 회장은 한동안 씨네큐브에 상영할 영화를 직접 고르기도 했다”고 전했다.
건물 로비에 은행지점 등 상업시설을 임차했다면 매달 꾸준한 임대 수익을 올릴 수 있었을텐데 흥국생명은 로비를 개방하면서 수익을 포기하고 대신 시민들에게 열린 문화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는 효과도 봤다.
흥국생명 직원들의 자부심도 높다. 흥국생명 한 직원은 “아내가 퇴근 시간에 맞춰 건물 앞에 마중 나올 때마다 건물이 인상적이라고 얘기한다”며 “사옥에서 만나게 되는 고객들도 멋진 사옥에서 근무하는 것을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 경희궁이 눈 아래…빌딩 숲 속 남산까지 조망
흥국생명빌딩의 시공은 LG건설(현 GS건설)이 맡았다. 1996년 12월 착공해 2000년 10월 준공했다. 건물 연면적은 7만2054.16㎡며, 지하 7층~지상 24층(127m)로 지어졌다.
흥국생명빌딩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전망은 어떨까.
건물 옥상 헬기 게이트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니, 경희궁과 덕수궁이 손에 잡힐 듯이 보였고 각양각색의 오피스빌딩들이 모여 ‘오피스 숲’을 이루고 있었다. 북쪽으로는 인왕산과 북악산이, 남쪽으로는 남산과 남산타워가 한눈에 보여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흥국생명빌딩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푸른 나무들로 둘러싸인 경희궁 숭정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숭정전 뒤편으로는 돈의문뉴타운 개발이 한창이다. 그 뒤편으로는 296m 높이의 안산도 보인다.
경희궁 방향에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남쪽을 바라보면 덕수궁과 남산타워가 시야에 펼쳐진다. 그 사이로 오피스빌딩들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늘어서 있다. 웨스틴조선호텔과 한화빌딩이 보이며, 덕수궁 바로 뒤편으로는 서울시청 을지로별관이 눈에 들어온다. 을지로별관 뒤로는 삼성생명 태평로빌딩과 삼성 본관이 형제처럼 나란히 서있다.
흥국생명빌딩 동쪽을 보면 새문안로와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오피스빌딩들이 마주 보고 서있다. 청계천 왼쪽으로 금호아시아나본관, 에스타워, 종로타워빌딩, SK본사 등이 보이며, 오른쪽으로는 조선일보, 서울파이낸스센터(SFC) 등이 눈에 띈다.
고개를 왼쪽으로 틀어 북쪽을 바라보면 왼편으로 높이 340m의 인왕산이, 오른편으로 높이 343m의 북악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뒤편으로는 북한산 자락도 보인다. 서촌(경복궁 서측) 지역도 시야에 들어온다.
360도 카메라로 찍은 사진(링크)을 보면 흥국생명빌딩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을 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