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앤더스 지음|이은영 옮김|휴머니스트|326쪽|1만6000원
“들고양이가 온순한 집고양이로 진화할 수 있었던 건 유전자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이런 내용의 논문이 실렸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와 텍사스A&M대가 참여한 공동 연구진의 연구 결과였다.
연구진은 고양이가 가축이 되는 과정에 기여한 유전자를 찾기 위해 먼저 아비시니아 고양이(Abyssinian cat) 암컷의 게놈을 분석했다. 전세계 애완 고양이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종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고양이의 게놈 정보를 호랑이와 개, 인간과 비교했다. 그 결과 유전자 281개가 들고양이의 가축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고양이를 처음 길들인 것은 약 5000년 전 고대 이집트인들로 알려졌다. 그때부터 이 281개 유전자들이 서서히 변화를 일으켜 왔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굳이 5000년씩 걸리지 않아도 인간이 원하는 특성을 지닌 동물을 태어나게 할 수 있다.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이제는 동·식물의 게놈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분리하거나 재조합할 수도 있다. 이 책에는 그런 동물 유전자 조작 사례들이 다양하게 소개된다.
유전자 변형은 뜨거운 논란거리다. 저자는 찬반 논쟁을 소개하면서 최대한 중립을 지키려고 애쓴다. 생명을 경시하는 인간의 무자비한 사례에 독자들이 분노하고 동물에 대해 연민을 느낄 만한 대목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 복제 프로젝트를 소개해 달래는 식이다.
결국 저자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첨단 과학기술이란 어떤 목적에서 어느 분야에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기술 자체는 좋다 나쁘다, 함부로 평할 수 없다는 얘기다.
예컨대 비글이나 슈나우저를 애완견으로 키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하지만 집안을 수시로 난장판으로 만드는 개의 기질이 고민인 그에게는 맞춤형 복제 기술이 도움을 줄 수 있다. 또 난치병 치료에 필요한 각종 영양분이 함유된 우유를 생산하는 형질 전환 염소가 탄생한다면 환자들에게는 큰 희망이 될 것이다.
물론 우려도 없지 않다. 인위적인 유전자 조작이 가져올 예상 밖의 부작용에 대한 고민과 대책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저자는 한 마리의 ‘완벽한’ 유전자 조작 동물을 위해 수많은 생명체가 실험실에서 희생되고 있는 문제도 지적한다.
동물에 대한 인위적 통제는 비단 생명공학을 통해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전자공학, 컴퓨터공학을 통한 방법들도 소개된다. 쥐의 뇌에 미세 전극을 꽂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조종하는 연구가 대표적이다.
만약 이 쥐가 건물 붕괴 사고 현장에서 돌더미에 파묻힌 생존자를 찾는 구조대원 역할을 해낼 수 있다면, 그 동안 연구실에서 죽어간 수많은 실험쥐들의 희생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책을 덮고 난 후에도 물음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