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항공기 회항(回航) 사건'을 일으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는 단계에 이르면서 대한항공의 안이한 초기 위기 대응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반대로 다른 대기업인 코오롱은 올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 처리 과정에서 최고경영진의 발 빠른 대응과 사과를 통해 기업 이미지 실추를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위기 발생 시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전면에 나서서 진정성 있게 사과한 후 상황을 솔직하게 공개하는 것이 초기 진화(鎭火)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가장 나쁜 것은 의혹을 부정하고 설명을 회피하며 조직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우왕좌왕 3일' vs 코오롱의 '발 빠른 9시간'
조현아 전 부사장이 기내 서비스를 매뉴얼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함을 지르며 사무장을 내리게 한 사건은 이달 5일 오후 2시 50분(뉴욕 현지 시각으로는 0시 50분)에 벌어졌다. 대한항공이 이에 대한 입장을 처음 표명한 것은 그로부터 3일이 지난 8일 밤이었다.
'승객분들께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대한항공 임원은 기내 서비스와 안전에 대한 점검 의무가 있다→사무장은 변명과 거짓으로 적당히 둘러댔다→조현아 부사장의 지적은 당연하다→앞으로 승무원 교육을 강화해 서비스 질을 높이겠다' 식으로 논리를 구성했다.
전문가들은 "사과문도 아닌 어정쩡한 입장 표명은 SNS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새로운 정보가 등장하는 지금 같은 시대엔 현실성이 없다"며 "이 발표문은 두고두고 위기관리 실패 표본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 내부에서 이 발표문에 대해 일부 반대 의견이 있었으나 수뇌부에서 무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올 2월 17일 밤 9시 15분쯤 코오롱이 운영하는 경주 마우나리조트가 붕괴했다. 10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한 대형 사고였다. 자택에 있던 이웅열 회장은 전화 보고를 받고 1시간 만에 과천 본사에 도착했다. 이어 상황을 파악하고 곧바로 밤 11시 사고 현장으로 향했다. 다음 날 날이 밝으면 내려갈 것이란 예상을 깬 결정이었다. 그는 이어 새벽 6시 사고 현장에서 "깊이 사죄한다. 코오롱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겠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건 발생 9시간 만에 최고경영진의 사과가 나온 것이다.
◇명문기업에서 위기관리 실패 잦아
전문가들은 "위기관리 실패 사례는 역설적으로 잘나가는 명문 대기업, 오너 중심 경영 조직에서 많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위기관리 전문가 박재훈 PR컨설팅 대표는 "대한항공은 평소 위기관리가 잘돼 있는 회사이지만 '오너들이 관련된 위기'에는 대책 없는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줬다"며 "이는 국내 기업들에서 오너가 성역(聖域)화돼 있어 오너 리스크와 관련해서는 누구도 제대로 조언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위기관리 실패의 대표 사례는 '유키지루시 유업'이다. 2000년 6월 1만5000명의 집단 식중독(食中毒) 사건이 일어나자 경영진은 원인 규명이나 피해자에 대한 사과 없이 "행정 대응도 문제가 있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잘못을 인정할 단계가 아니다" 등의 공식 입장만 반복했다. '국민 브랜드'였던 유키지루시 유업은 이 사건을 계기로 2002년 파산했다.
박태일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위기관리에 실패한 국내외 기업들을 분석해보면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과 고객 대응을 관행대로 하다가 일을 크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