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란, 리비아 등 중동 국가는 음주를 엄격하게 금지한다.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다가 적발되면 외국인도 감옥에 갈 수 있다.
중동에서도 음주에 가장 엄격한 곳이 사우디아라비아다. 아랍에미레이츠연합(UAE)의 두바이나 아부다비는 외국인에겐 음주를 허용하지만, 사우디에서 술을 마시다가 발각되면 가차없이 형벌이 쏟아진다. 형벌도 무섭다. 현지 경찰한테 그 자리에서 몽둥이로 맞거나 며칠동안 쇠창살 신세를 져야한다. 변호사 선임, ‘미란다 원칙’ 같은걸 들어볼 기회도 없다.
국내 건설사 근로자는 중동에서 소주 한 잔, 시원한 맥주 한 잔도 마음 놓고 마시지 못한다. 음주는 반드시 현장 숙소 안에서 하되, 술에 취한 채 길거리를 활보하면 안된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곳에선 술을 구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주신(酒神)을 누가 막을쏘냐. 먼 타국에서 가족과 떨어져 덥고 거친 환경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그나마 술로 애환을 달랜다. 그들이 마시는 술 이름은 발효주란 뜻의 ‘싸대기’다.
싸대기는 밀주다. 제조나 음주나 모두 비밀리에 만들어진다. 현지 건설사 근로자들은 “현지 경찰에게 걸리면 문제가 생기므로 싸대기를 쉬쉬하면서 만들어 마신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싸대기는 주로 공사 현장에 있는 숙소 안에서 몰래 만든다. 만드는 방법도 다양하다. 주로 항아리에 과일과 설탕을 넣고 담요 같은 것에 꽁꽁 싸매어 놓아 발효시킨다. 요즘같이 더운 여름에 자동차 안에 오렌지주스를 오래 두면 발효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90년대 후반 사우디아라비아에 근무한 적이 있는 A건설사 김씨는 “한국에서 누룩(술을 만들 때 쓰는 발효제)과 밀가루를 가져가 현지 숙소에서 몰래 술을 담궈 마셨다”며 “맛도 없고 숙취도 심했는데 요새는 싸대기 제조 기술이 발전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과거에 리비아에 근무했다는 B건설사 박모씨는 “취향에 따라 현지에서 나는 오렌지, 대추야자 등 과일을 발효시켜 마시기도 했다”며 “싸대기는 무향무취에 가깝지만 알코올 도수는 30도를 웃도는 독주였다”고 말했다.
싸대기는 냄새가 심해 주로 콜라, 사이다, 과일주스 등을 섞어서 마신다. 멋 모르고 원액부터 마시면 속이 메슥꺼리고 ‘싸대기’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하다고 한다.
여러 중동 국가를 다니며 근무했던 C건설사 최모씨는 “한국인 숙소에서 싸대기 양조를 즐기는 직원이 있었는데 솜씨가 좋았다. 좋은 술 한잔을 얻어먹기 위해 다들 그 직원을 친절히 대우해줬다”며 “그 직원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싸대기 만드는 비법을 후임한테 전수해줘 술맛을 이어갔다”고 설명했다.
한국인들의 싸대기 사랑을 안 동남아 근로자들은 직접 술을 담궈 암시장에서 팔기도 한다. 그런데 돈 욕심이 난 동남아 근로자가 과일을 발효시키는게 아니라 공업용 알코올을 넣은 싸대기를 팔았다. 이것을 모르고 마신 사람이 병원에 실려간 일도 있었다.
아부다비에는 ‘술을 사거나 마실 수 있는 자격증(Liquor License)’도 있다. 비(非) 무슬림만 신청할 수 있다. 우리 돈으로 악 7만~8만원을 내면 신분 확인 절차를 거쳐 자격증이 나온다. 이 자격증이 있으면 술 취한 상태에서 길을 걷다가 적발돼도 처벌은 면한다.
요즘엔 중동 국가에서 암시장이 발달해 위스키, 보드카 등 양주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해외에서 설날이나 추석이 되면 면책특권을 받는 대사관의 외교행랑을 이용해 건설 현장에 1병씩 선물이 들어오기도 한다. 금주(禁酒)의 땅에선 위스키 한 병도 대단한 호사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중동·아프리카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국 건설사 임직원은 총 1만5325명(2013년 말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