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CPO-2 광구 투자 실패는 한국석유공사의 해외자원개발사업이 얼마나 주먹구구로 이뤄졌는지 보여준다. 투자 결정 과정에서부터 사업 철수까지 석유공사는 논란만 남겼다.

◆ 원유탐사 성공확률 25%에서 35%로 둔갑

한국석유공사 A팀장은 2006년 11월부터 콜롬비아 CPO-2, CPO-3 광구 탐사사업을 총괄했다. 당시 해외유전개발사업 평가기준 및 투자의사 결정지침에 따르면, 석유광구 탐사사업 투자는 기대현금흐름이 0 이상일 때만 가능했다. 당시 석유공사 기술평가실은 콜롬비아 CPO-2, CPO-3 광구의 원유탐사 성공확률을 25%로 평가한 기술평가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25%의 성공확률로 사업성을 평가할 경우 기대현금흐름이 손실로 나타나 투자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러자 A팀장은 성공확률을 재평가할만한 추가 자료도 없이 기술평가실과 회의를 열고 원유탐사 성공확률을 25%보다 더 높이도록 했다. 결국 원유탐사 성공확률 35%를 근거로 사업성을 재평가했고, 기대현금흐름이 충분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석유공사는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2008년 12월 콜롬비아 CPO-2, CPO-3 광구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해외자원개발사업에 필요한 이사회 승인 과정도 생략했다.

한국 석유공사가 베트남에서 개발 중인 가스전 모습.

감사원은 2009년 석유공사의 콜롬비아 광구 원유탐사 성공확률 조작 사실을 적발해냈다. 석유공사와 A팀장은 “낙찰자 선정일로부터 계약체결일까지 5일밖에 없어 이사회 승인을 얻지 못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최초 기술탐사보고서상 광구탐사 성공확률은 장기간에 걸쳐 작성된 자료로 재평가 자료도 없이 회의 당일에 원유 탐사 성공확률을 변경한 사례는 없다”며 “긴급이사회를 열어 승인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A팀장의 변명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결국 조작 논란 이후 5년이 지난 끝에 석유공사는 콜롬비아 CPO-2 광구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원유탐사에 들어간 수백만달러를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 한치 앞도 못 보는 투자

콜롬비아 CPO-2 광구 투자 실패는 석유공사의 해외자원개발사업 실패 리스트에서 앞쪽에 들지도 못한다. 워낙 손해를 본 사업이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캐나다 하베스트사 투자다. 석유공사는 2012년 당기순손실 9040억원을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하베스트사 투자 관련 손실만 8202억원에 이른다. 결국 석유공사는 지난해 하베스트사를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매수 희망 기업을 찾는 중이다.

하베스트사 투자는 처음부터 엉망이었다. 석유공사가 2009년 10월 하베스트사 인수에 나서면서 원래 하베스트의 부실 자회사인 노스아틀랜틱리파이닝(NARL)은 인수 대상에서 제외했다. NARL은 과거 1달러에 거래된 적도 있는 부실 자회사였다. 하지만 하베스트 이사회가 NARL을 제외한 인수 제안을 거절하자 석유공사는 결국 NARL을 하베스트와 함께 인수했고, 이후 NARL은 계속 손실을 내며 석유공사에 부담만 주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현재 의원(새누리당)은 이 문제를 지적하며 “기초적인 정보 확인이나 현장실사도 없이 하베스트측 자료만 바탕으로 자산평가를 졸속으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석유공사의 하베스트 투자는 에너지 업계의 변화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뤄졌다. 최근 에너지업계는 셰일가스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석유공사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석유 자주개발률 높이기에만 주력했다. 에너지업계의 큰 흐름이 셰일가스로 전환하고 있는데, 석유 광구 개발에만 전념한 것이다. 근시안적인 투자는 곧바로 손실로 돌아왔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셰일가스 공급으로 북미 원유·가스 가격이 하락하면서 하베스트에 투자한 석유공사가 800만달러의 손실을 봤다고 지적했다. 셰일가스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수록 석유공사의 손실도 커질수밖에 없다.

석유공사 해외자회사들이 보유한 광구별 순현재가치는 인수 당시보다 1조3530억원(작년 6월말 기준)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인수했을 때보다 가치가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부실한 투자 결정 과정에서 비롯됐다. 이진복 의원실(새누리당)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해외자원개발기업 및 자산 인수 8건 가운데 6건은 실사를 보름도 하지 않았다. 문제가 되고 있는 하베스트사의 경우에도 자산 실사기간은 11일에 불과했다.

◆ 혈세 날리면서 비행기는 비즈니스석

석유공사가 해외자원개발사업 실패로 혈세를 날리고 있지만, 석유공사 임직원들은 그 어떤 공기업보다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국감에서는 석유공사 직원들의 비즈니스석 출장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진복 의원(새누리당)은 석유공사 1~2급 직원들이 2006년 이후 해외출장 때 비즈니스석을 이용한 경우만 362건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같은 기간 임원들도 224차례에 걸쳐 비즈니스석을 이용해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기획재정부 공기업 예산집행지침은 차관급 공무원에 준해 비즈니스석을 이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정부 지침까지 어기고 일반 직원들까지 비즈니스석을 이용해 온 것이다. 이렇게 다녀온 출장은 고스란히 석유공사에 손실로 돌아왔다.

급여도 매년 오르고 있다. 석유공사 직원 1인당 평균 기본급은 2008년 4773만원에서 매년 올라 2012년에는 5492만원까지 상승했다. 각종 상여금을 합치면 매년 평균 7000만원 이상을 받고 있다.

서문규 한국석유공사 사장.

서문규 석유공사 사장이 복리후생 개선, 경영혁신 등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서 사장은 석유공사 내부 출신으로 사장까지 올랐기 때문에 직원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과감하게 석유공사를 개혁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서문규 석유공사 사장이 올린 경영정상화 방안을 여러 차례 퇴짜 놓기도 했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석유공사의 경우 경영실적 계량지표 중 하나인 계량관리업무비 평점이 100점 만점에 72.44점인데 관리업무비 비중이 높은 상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해외자원개발사업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분명하게 밝히고, 과도한 관리업무비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