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부터 2011년까지 9년간 한강 다리에서 발생한 투신사고는 1090건에 달했다. 이 중 17%인 188건이 마포대교에서 발생해 마포대표는 '자살대교'라고 불렸다.
김홍탁 제일기획 마스터(ECD)는 팀원들과 함께 사회적 이슈인 자살률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자살 예방 캠페인인 '생명의 다리' 프로젝트를 마포대교에 설치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생명의 다리' 프로젝트는 마포대교 위에 동작 센서와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설치하고 보행자가 다리를 건너며 '밥은 먹었어?'와 같은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게 해 자살을 예방하자는 캠페인이다.
제일기획은 서울시, 삼성생명과 공동으로 지난해 9월 마침내 마포대교가 생명의 다리로 재단장했다. 마포대교는 이제는 '자살대교'가 아닌 '생명의 다리'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오형균 아트와 김경태 AE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더라면 이 프로젝트는 빛을 보지 못했을 거라고 김홍탁 마스터는 전했다. 생명의 다리 프로젝트는 최근 부산에서 열린 부산 국제광고제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광고제인 칸, 클리오, 원쇼, 애드페스트 등에서 총 37개의 상을 받았다.
김 마스터는 "4~5년 전까지만 해도 국제무대에 나가면 제일기획이 도대체 무슨 회사냐는 질문을 받아 한참을 설명해야 했다"며 "하지만 올해는 나에게 South Korea(남한), Cheil(제일기획), Bridge of Life(생명의 다리) 3가지를 콕 집어 물어볼 정도로 제일기획을 잘 알고 있더라"고 말했다.
김 마스터는 1995년부터 제일기획에서 근무하고 있다. 마스터는 제일기획이 부문별 최고 전문가에게 조직 관리 업무에 대한 부담 없이 광고제작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부르는 직함이다. 칸을 포함해 국제광고제에서 받은 상만 수십 개에 달하며 최근 열린 칸광고제에서는 세미나도 진행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인 빌 게이츠와 아내 멜린다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공모받아 가장 좋은 아이디어에 자금과 인력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인 '칸 키메라' 14명의 전문 심사위원 가운데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김 마스터가 들어있다. 김 마스터는 스스로를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또 그런 생태계를 지지해주는 전문가'라고 정의했다.
"광고 만드냐고요? 이제는 플랫폼을 만든다고 말하는 게 맞죠."
김홍탁 마스터는 '광고'는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잡지 등 4대 매체를 중심으로 광고를 만들 때 사용되던 용어고 이제는 '플랫폼을 만든다'고 하는 게 맞다며 이같이 말했다.
생명의 다리 프로젝트 또한 4대 매체를 통해 '광고'를 한 것이 아니라 다리라는 새로운 통로, 플랫폼을 만든 경우다. 김 마스터가 진행한 CJ제일제당 생수 '미네워터'의 기부 프로젝트도 텔레비전이나 인쇄매체가 아닌 생수병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에서 진행됐다. 생수병에 가격을 표시하는 바코드 외에 한개의 바코드를 더해 사람들이 쉽게 기부에 동참할 수 있도록 했다. 소비자가 계산시 기부 의사를 표시하면 기부바코드를 추가로 인식해 생수 값 외에 100원이 기부된다. 이 경우 CJ제일제당과 CU(구 훼밀리마트)의 기부금이 100씩 더해져 총 300원이 아프리카에 전해졌다.
김 마스터는 "전 세계적으로 4대 매체가 아닌 새로운 곳에서 광고를 하는, 즉 플랫폼에서의 광고활동이 활발하다"며 "이 시대의 광고는 소비자에게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놀이터를 만들어줘 소비자가 직접 체험하게 하고 이에 대해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직접 놀 수 있는 공간이나 가지고 놀 제품을 만들어주라는 것이다.
그는 이 시대 성공적인 광고의 필수조건에 대해서는 "판매를 이끌려고 노력하지 말고 가치를 만들어내는 플랫폼을 만들면 판매는 저절로 따라온다"며 "구전(口傳) 효과, 공유가치 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이 가능한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마스터는 "우리나라와 일본 광고의 경우에는 나라가 좁다 보니 광고를 물건을 팔기 위한 도구로 봐 제품 자체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2009년부터 줄곧 칸 광고제에서 수상하며 제일기획은 국제무대에서 실제로 활발히 뛰는 선수가 됐다. 이제는 해외 유명 대기업이 제일기획에 찾아와 아이디어 내는 방법 등에 대한 조언을 직접 구하러 오기도 한다. 그는 제일기획의 현 위치에 대해 "라이징 스타(뜨는 스타)"라고 한마디로 답했다.
그가 광고인으로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데에는 크게 세 번의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글로벌 광고를 국내 광고회사가 담당하지 않았던 2000년, 국내 광고시장이 포화돼 글로벌 광고를 빨리 맡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이때 광고인으로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고 말했다. 그는 "2004년 뉴욕법인에서 일한 것 또한 실제로 글로벌 광고시장을 직면해 역량을 키울 수 있었다"며 "2009년 디지털 광고를 국내에서 남들보다 빨리 시작해 국내, 해외, 디지털 광고시장을 모두 선도해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트렌드를 남들보다 앞서 내다보는 능력, 호기심이 많은 성격, 디지털 환경에 대한 관심이 그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었다는 설명이다.
김 마스터는 "갈 길이 안 보이는 것은 답답하지만, 보이는 데도 안 가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며 "뚝심 있게 생각한 것을, 아이디어를 직접 실행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생명의 다리 프로젝트, 미네워터 기부 프로젝트 모두 광고주가 제일기획에 제안한 것이 아니라, 제일기획이 직접 아이디어를 갖고 광고주에게 제안한 것이다.
김 마스터는 트렌드를 빨리 읽는 비결에 대해서는 "답은 세상 도처에 있다"며 "경험과 아이디어가 창고에 쌓이면 큰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