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백 하천용 사장

주한 스웨덴 대사관에서 상무관으로 근무하던 한 청년은 우연찮게 알게 된 스웨덴 사람들의 쓰레기 처리 모습이 신기했다. 새벽이면 골목마다 쓰레기차가 수거해 가던 우리나라와 달리, 정해진 투입구에 쓰레기를 넣으면 자동으로 집하장에 모이는 방식이었다. 그는 아파트 생활을 많이 하는 우리나라에 가져와야 겠다고 마음을 먹고 1990년대 초반 국내 최초로 쓰레기 자동집하 시설을 들여왔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이제 10만 가구가 쓰레기 자동집하 시설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대 생활 쓰레기 자동집하시스템 전문기업 엔백 하천용 사장 이야기다.

◆ 진공청소기 작동 원리 이용해

엔백(envac)은 환경(environment)과 진공(vacuum)의 앞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쓰레기 자동집하 시스템은 진공청소기와 작동 원리가 비슷하다. 투입구에 정해진 규격의 쓰레기를 넣으면 지하에 설치된 관을 따라 쓰레기가 집하장으로 따로 모이는 방식이다. 지하에 설치된 관은 진공청소기가 쓰레기를 빨아들이듯 강한 공기압을 이용해 쓰레기를 옮긴다.

분리수거도 가능하다. 요일을 정해 투입일에 맞게 조절 밸브를 활용, 컨테이너 별로 쓰레기를 모을 수 있다. 음식물 쓰레기 역시 이런 시스템으로 청결하게 처리할 수 있다.

아파트뿐 아니라 일반 공장에서도 이 시스템을 사용 중이다. 대한항공(003490)아시아나항공(020560)의 기내식 공장에도 설치됐다. 항공기 기내식 제조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와 탑승객들이 먹고 버린 각종 쓰레기를 자동화 시스템으로 손쉽게 해결하고 있다.

쓰레기 자동 집하 시스템 개념도

하천용 사장은 "1960년 경제개발 이후 주거와 소득, 환경 등이 모두 변했고, 이제는 얼굴을 보면서 통화까지 하는 시대가 됐다"며 "유독 쓰레기 처리 부분은 과거와 달라진 게 없었는데, 이를 해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엔백에 따르면 현재 쓰레기 자동화 시스템 시장은 연 4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작년 엔백은 연매출 350억원, 영업이익 28억원, 당기순이익 23억원을 기록했다.

엔백은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같은 단일 단지를 비롯해 서울 은평뉴타운, 용인 흥덕지구, 고양 식사지구, 일산 덕이지구, 과천주공 3단지, 11단지 재건축, 인천 청라지구 등 20개가 넘는 곳에 시스템을 설치했다. 서울 가재울 뉴타운, 김포한강신도시 등에도 자사 시스템이 설치돼 공사가 진행 중이다.

김포 한강신도시 내 쓰레기 자동 집하장 투입구 모습

◆ "기술력 없는 업체의 난립은 문제"

엔백 역시 건설 관련 업종이다 보니 최근 기업 환경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 찾은 대안이 해외시장이다.

하 사장은 "대만에서는 이미 작업을 했고, 최근에는 일본 상업시설에 쓰레기 자동집하 시설을 수출했다"며 "동남아, 호주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싱가포르 국토부 장관, 태국 파타야시 부시장, 중국 텐진 에코시티 당 서기 등이 쓰레기 집하 시설을 견학하고 갔다.

하 사장은 건설 불황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부실 업체들 때문에 쓰레기 자동집하 시설 설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퍼지는 점이라고 말했다.

1995년 엔백이 용인수지2지구의 7000가구에 대한 자동화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끝내자 토지공사와 주택공사, 서울시 SH공사 등의 공공기관이 엔백에 물량 발주를 늘렸다. 입주민들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시설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천용 사장과 태국 파타야시 직원들

시장이 점점 커지자 2005년부터는 대형 건설사들이 해당 시설 설치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경쟁은 치열해졌고 기술력이 부족한 업체들이 영업력만 앞세워 공사를 따가는 일도 허다했다.

하 사장은 "시장이 커지니 기술력이 없는 업체들도 너도 나도 사업에 뛰어들었다"며 "하지만 기술력이 없다 보니 공사 후에도 잔 고장이 계속 발생하고 자동집하 시설이 불편하다는 부정적 시선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오히려 부실 업체들이 시장 평판을 깎아먹는 부작용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의 독자적인 기술을 독일계 회사가 무효화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며 "우리의 신기술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