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까지 입금해야 한다고 전달한 게 맞습니까?"
S신문사가 은행의 실수로 1000억원대의 수주전에 참여하지 못한 사건에 대해 금융당국이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습니다. 당초 농협은행 지점의 전산 시스템 오류가 원인으로 파악됐던 이 사건을 놓고 우리은행과 농협은행이 '오후 4시의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습니다. 어찌된 영문일까요?
S신문사는 지난 6일 오후 3시 35분 우리은행 무교지점에서 서울시 버스운송사업조합의 시내버스 외부광고 대행 운영사업자 수주에 참여하기 위해 입찰보증금 61억원을 '지준이체(지급준비금이체)' 방식으로 농협은행 인천영업부 가상계좌로 송금했습니다. 우리은행 자금부는 오후 3시42분 농협 인천영업점에 입금했지만 농협 인천영업점은 입찰마감시간이 지난 오후 4시 3분에야 송금했고 결국 S신문사는 보증금 미납으로 입찰 자격을 잃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지준이체'입니다. 지준이체는 은행간 자금부를 통해 한국은행을 거쳐 일선 지점으로 이체하는 방식입니다. 일반 타행환 이체는 한 번에 1억원씩 한도가 있고 한번 송금에 3000원씩 수수료가 나오기 때문에 각 시중은행은 10억원 이상 거액송금 거래는 한은 '지급준비금'을 통해 돈을 이체하는 지준이체 방식을 권합니다.
지준이체는 은행끼리 전산만 거치면 되는 일반이체와 달리 과정이 복잡합니다. 영업점 입금-입금은행 자금부-한국은행-송금은행 자금부-송금은행 영업점 승인-송금 등 최소 6번의 사람이 직접 개입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시중은행들은 '시간절약'을 위해 지준거래 신청이 들어왔을 때 전산을 통해 일선 영업점에 '공지'를 하는 자체 알림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농협도 자체 '알람' 기능이 있습니다.
문제는 '입찰보증금' 계좌가 가상계좌였다는 데 있습니다. 농협에서는 일반계좌는 계좌번호 안에 계좌 개설 지점 등 관련 정보가 있어 지준이체를 하면 해당 지점 전산에 '긴급' 공지가 자동으로 나오지만 가상계좌는 관련 정보가 없기 때문에 공지가 뜨지 않았습니다. 농협은행 인천영업점 담당자는 당당합니다. "공지도 받지 못했고 본사 자금부 담당자는 물론 입금은행(우리은행)도 오후 4시까지 입금하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금융당국은 난감한 상황이 됐고, 책임소재를 가리기 위해 우리은행에 농협의 반박에 소명하는 '자료'를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은행 담당자는 속이 타들어갑니다. 이 관계자는 "오후 3시 40분부터 오후 4시까지 농협은행 해당 지점에 S신문과 번갈아가며 전화해 입금 상황을 물었다"면서 "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십차례 확인전화를 했는데 '오후 4시'라는 말이 더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립니다.
시중은행 자금부 한 관계자는 "'지준이체'라고 하면 급박한 것으로 인식하고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지준이체를 늑장 처리했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영업점의 분위기가 느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니탓네탓 공방할 때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정확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시중 은행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체적으로 거액 거래 내부 시스템 점검 및 보완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급준비금이체 등 거액 거래 내부 시스템이 가장 우수한 곳으로 국민은행이 꼽힌다"면서 "지준이체를 할 때 해당 지점장에게 문자메시지(SMS)를 보내는 방식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신한·기업은행은 자금부에서 보완할 점이 있는지 살펴보고 개선점을 논의 중이며 하나은행도 지준이체 방식에 대한 자체점검을 마쳤습니다.
입력 2012.12.1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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