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크라운관광호텔에서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쪽으로 3~4분 걸어가자 사방이 번쩍이는 유리로 둘러싸인 지상 10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작년 3월 용산구청이 1500여억원을 들여 완공한 신청사다. 섭씨 32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 청사로 들어가려니 출입구 손잡이를 잡아야 했다. 순간 "앗! 뜨거!" 소리가 절로 나왔다. 건물 안 로비는 찜질방이나 진배없었다. 5분쯤을 버텼을까. 등줄기엔 땀이 줄줄 흘렀다.

용산구청 신청사의 경우 건물골조와 바닥을 빼고 난 건물 외벽은 몽땅 유리로 둘러처져 있다. 한마디로 '유리외벽 건물'인 셈인데, 이런 건물을 '글라스 커튼 월'(glass curtain wall·건물 외벽을 유리로 감싸는 방식) 건물이라 한다. 외벽이 유리인지라 햇볕은 건물 안으로 그대로 통과한다. 이러니 햇볕이 내리쬐면 눈이 부셔 유리창에 커튼을 쳐놓은 사무실이 많다. 한 직원은 "커튼으로 햇볕을 가릴 바에야 왜 유리로 지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직 본격적인 무더위 전이다. 그러나 대부분 유리외벽 건물에서는 실내온도가 치솟아 냉방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글라스 커튼월 건물은 한여름이나 동절기 때에는 냉난방장치 가동률이 높을 수밖에 없어 '전기 먹는 하마'라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외관이 보기 좋다는 이유로 기업체와 공공기관에서는 번쩍이는 유리 건물을 짓는 게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세빌스코리아 김정은 팀장은 "최근 2~3년간 서울 도심에 들어선 대형 고층빌딩은 예외없이 전부 또는 부분적인 글라스 커튼월 건물"이라고 말했다.

찜통더위에 직원도 민원인도 불만

서울 용산구청의 한 여직원은 "에너지를 아낀다며 직원 15명인 우리 과에 선풍기 3대를 갖다 놓고 더위를 견디고 있다"며 "선풍기 바람조차 못 쐬는 민원인들을 보면 민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박경자 주민생활지원과 팀장은 "부채가 유일한 더위 퇴치 도구"라고 했다.

'유리의 성(城)'으로 통하는 서울 금천구청 청사도 구청 직원들이 때 이른 실내 찜통더위에 헉헉대고 있다. 행정지원과 강성운씨는 "주말마다 대강당을 주민들에게 빌려주는데 덥다고 불평이 많다"고 말했다. 건축비만 3200억여원이 든 경기 성남시청사도 비슷하다. 한 공무원은 "요즘엔 옷을 벗고 일하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도심의 오피스 빌딩에서도 찜통더위와 싸우는 직장이 적지 않다. 서울 신문로의 LG광화문빌딩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에어컨을 세게 틀어 겨우 견디고 있다"면서 "문제는 올여름 전기료 부담을 회사가 어떻게 견디느냐 하는 점"이라고 걱정했다.

에너지 효율 낮은 유리 건물

커튼월 건물은 고급스럽고 독특한 디자인을 연출할 수 있고 외관도 깔끔해 최근 건물주들 사이에 인기다. 피데스개발 김승배 사장은 "통유리 건물은 남과 다른 차별성을 느끼게 하고 하이테크한 분위기도 난다"고 말했다.

유리건물은 시공이 간편해 공사기간이 짧고 하자도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관계자는 "일반 유리로 된 외벽이 일반 콘크리트로 된 벽보다 열 에너지 손실이 7배나 더 많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가 지난해 초 전국 246개 지자체 청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경기도 용인시청사와 경기도 광주시, 강원도 원주시청사 등 2005년 이후 완공된 유리 건물의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커튼월 방식을 많이 사용하는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도 여름이면 실내온도가 높아 냉방 전력 사용량이 일반아파트보다 최대 2배 이상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