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왜 닌텐도 같은 게임이 없을까?" 요즘 IT업계의 최대 화두는 닌텐도다. 이명박 대통령이 "닌텐도 같은 게임을 만들자"고 말한 뒤 '명텐도'란 단어가 화제가 될 정도다. 삼성전자 이재용 전무는 지난주 "닌텐도를 배우자"며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Digital BIZ는 이명박 대통령이 던진 화두를 놓고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전문가들과 이메일 대담을 벌였다. 이들은 올가을 학기부터 교육과학기술부가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으로 선정한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is.skku.edu)에서 강연을 맡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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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비오카 교수(이하 비오카):"닌텐도의 성공을 놓고 미국에서도 많은 논쟁이 있었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닌텐도의 성공 요인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능력 부족'이다. 닌텐도는 2006년 위(Wii)를 미국에 출시했다. 사실 위는 경쟁제품인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에 비해 성능 면에서 처진다. 당시 게임 제조업체들은 더 사실적인 화면을 더 빨리 움직이게 만들기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처음 제품을 출시할 때 미국 닌텐도 지사장은 'MS와 소니는 더 비싸고 성능 좋은 제품 만들기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우린 다른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또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절반 정도가 집에 두 종류 이상의 게임기를 가지고 있다. 새로 게임기를 산다면 색다른 게임기를 가지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다. 중형차를 타는 사람이 차 한대를 더 산다면 경차나 RV(레저용 차량)를 사는 게 일반적이다. 소니와 MS가 중형차라면 닌텐도는 경차다."

이관민 교수 "기존 제품 개량에서 벗어나 다재다능한 다빈치형 인재 배출할 인프라 구축해야"

이관민 교수(이하 이관민): "닌텐도의 성공은 소비자들이 좀 더 현실적인 서비스와 제품을 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비자가 원하는 현실은 일반적인 현실과 다르다. 소니·MS는 더 사실적인 영상을 소비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돈을 투자했다. 그러나 닌텐도는 발상을 바꿨다. 골프게임을 생각해보자. 소니·MS 게임기는 조이스틱을 움직이거나 클릭하면 타이거 우즈가 스윙을 하는 장면을 거의 현실처럼 보여준다.

반면 닌텐도의 화면은 어설프지만 직접 스윙을 해야 볼이 날아간다. 뭐가 더 현실적인지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소니·MS와 닌텐도 모두 현실적인 게임을 만들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소니·MS가 투자한 현실은 가상현실이다. 반면 닌텐도는 소비자의 자아(自我) 현실에 투자했다. 소비자는 자아현실의 손을 들어주었다."

비오카: "닌텐도는 경쟁자들이 장악한 시장에서 경쟁자들과 같은 규칙을 따르면서 싸우면 필패(必敗)라는 것을 안 것이다. 그래서 발상을 바꿔 새로운 규칙과 시장을 만들고 지배하기 시작했다."

선더 교수 "개발자들은 심리학 등 혁신에 필요한 학문 제대로 이해해야"

S.시암 선더 교수(이하 선더): "색다른 판매·마케팅 전략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 게임기를 시장에 내 놓을 땐 게임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 하지 않는 사람도 사로잡을 전략이 필요하다. 보통 게임기를 살 때 끼워 주는 게임은 그저 구색 맞추기다. 그러나 닌텐도는 달랐다. 미국에서 위(Wii)를 사면 위 스포츠가 따라왔다. 위 스포츠는 동작을 인식하는 위 게임기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다. 게임기를 산 사람들이 주변에 자랑을 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다시 제품을 샀다."

이관민: "유럽에도 닌텐도와 비슷한 발상으로 성공한 사례가 있다. 2004년 필립스는 '엠비라이트TV'를 출시했다. 엠비라이트TV는 필립스의 시장 점유율을 7%에서 단숨에 14%로 끌어올렸다. 사실 TV업체들은 화질과 선명도에 엄청난 투자를 하지만 화질·선명도에서 차이를 내기는 매우 힘들다. 그래서 필립스는 생각을 바꿨다. 화면 바깥쪽에 화면 속 영상과 비슷한 색이 은은하게 조명으로 깔리는 제품을 만들었다. 시각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이 경우 사람들은 화면을 더 크고 선명하게 느낀다. 또 실제로 사람들은 엠비라이트TV가 더 선명하고 화면도 더 크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소비자의 자아현실이다."

비오카 교수 "경쟁자가 장악한 시장서 같은 규칙으로 싸우면 必敗 발상 전환으로 시장 창출"

비오카: "닌텐도 위의 장점은 온몸을 조이스틱이나 마우스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위가 자랑하는 동작 인식은 사실 기술적으로는 별 게 아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가상현실연구소엔 동작을 감지하는 장치가 있었다. 닌텐도가 그것을 제품으로 만들어 집으로 가져 온 것뿐이다. 동작 인식 기능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나이 많은 사람들도 쉽게 게임을 배우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 볼링·테니스를 하던 사람들이 조이스틱으로 게임을 하려면 게임을 다시 배워야 한다. 그러나 위를 가지고 놀기 위해 게임 조작법을 다시 배울 필요가 없다. 몸으로 원래 하던 동작을 하면 그만이다."

선더: "더 중요한 것은 손가락이 아니라 몸을 써서 게임을 해 본 사람들은 이제 몸을 움직여도 게임기가 반응하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불편해한다는 것이다. 닌텐도가 게임의 본질을 바꾼 것이다."

이관민: "아직 한국기업이 전혀 새로운 유형의 제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는 없다. 한국 기업의 강점은 기존 제품의 개량·개선이다. 반도체가 좋은 예다. 더 빠르고 더 정밀한 제품을 끊임없이 개발한다. 그러나 개선·개량엔 한계가 있다. 이제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지 않지만 창의적인 부분에 투자할 때다."

비오카: "미국 혹은 한국 기업이 구조적으로 닌텐도류의 혁신을 못한다는 생각은 오류다. 이미 말한 것처럼 동작인식 기능은 1990년대 초반 이후 흔한 것이었다. 닌텐도가 비전과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그것을 상품으로 만든 것뿐이다. 2004년 닌텐도 DS가 나오기 전까지 닌텐도는 위기였다. 필요한 것은 이와타 사토루 닌텐도 사장 같은 비전을 가진 기업가(entrepreneur)다."


선더: "더 성능이 뛰어난 제품을 만드는 것은 개발자 중심의 혁신이다. 그러나 닌텐도 같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인간을 이해한 상태에서 혁신을 해야 한다. 소비자 중심의 혁신을 하려면 개발자들이 커뮤니케이션 이론과 심리학 등 필요한 학문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그 분야 전문가와 같이 일해야 한다."

이관민: "사용자 중심의 혁신은 다양한 분야의 창의적인 인재들이 함께 모여 일할 때 나온다. 이런 연구개발 구조와 후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 남가주대학(USC)에는 르네상스 스칼라 제도가 있다. 전혀 다른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해외연수를 지원한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다재다능한 인재를 키우자는 것이다. 21세기는 다시 다빈치형 인재가 필요한 시기다. 닌텐도식 혁신을 원한다면 다빈치를 다수 배출할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관민 남가주대학(USC) 에넌버그 스쿨 종신교수

저널오브커뮤니케이션, 휴먼커뮤니케이션리서치 등 7개 주요 국제학술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성균관대학교 WCU 사업단장이다.

◆프랭클린 비오카 미시간 주립대 AT&T 석좌교수

전 세계 7개국 10개 대학이 참여하는 'Multimedia Interface&Network Design(MIND) Lab' 총괄 디렉터다. 미국과학재단, 유럽연합, 미국보건국 등의 연구과제를 수행하며 국제학술지에 150편 이상 논문을 발표했다.


◆S.시암 선더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종신교수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사회·심리학적인 영향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로, 세계 커뮤니케이션 학회(ICA) 기술연구 분과 의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