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빅3 스포츠에 속하는 F1(Formula 1ㆍ포뮬러 원). 시속 370km에 달하는 폭풍질주, 고막을 찢을 듯한 엔진소리, 코너에서 벌어지는 숨막히는 추월경쟁이 매력인 F1은 단연 자동차 경기의 최고봉이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른 우리지만 F1에 대한 관심도는 아직 낮은 편이다. F1에 명함을 내밀지않고서는 자동차 업계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 스포츠행사이기도 하지만 F1은 자동차 관련 업체들의 피를 말리는 승부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첨단 자동차 기술의 경연장이며 수만명의 관중이 몰려드는 ‘스포츠 제전’인 F1에 대해 3회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 주)
--------------------------------
전세계 자동차 경기 중 F1만큼 많은 기업들이 참가하고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경기는 없다. F1은 해마다 16개국을 돌며 경기를 치르고 200여개 국가에 방송되는 지구촌 스포츠 제전이다.
|
경기장은 대회가 열리는 3일간 8만~10만여명의 관중들로 발디딜 틈 없다. 외국인 관광객만 해도 수만명이 몰려든다.
F1는 누가 1등이냐를 겨루는 단순한 자동차 경기, 그 이상이다. 그것은 엄청난 자동차 산업의 피를 말리는 생존 경쟁의 현장이다. 0.1초를 다투는 극한적인 속도경쟁이기에 첨단기술의 경연장이며 수십억명의 시청자가 있기에 전세계 유수 기업들의 홍보 각축장이다. TV중계료도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안팎으로 월드컵에 버금간다. 이처럼 F1은 수조원에 달하는 시장을 가진, 자동차 기술과 전세계를 대상으로 펼쳐지는 이벤트가 결합된 하나의 산업이다.
◆ 홍보효과 노린 세계 자동차 업체들의 투자
F1은 TV를 통해 전세계에 중계되므로 후원 기업의 로고가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오랜 시간 노출된다. 즉 경주차는 움직이는 광고판인 것이다. 팀의 성적이 좋을수록 더 많이 시청자들이 볼 수 있어 홍보효과는 극대화된다.
이런 홍보효과를 노린 수많은 기업들이 F1팀을 후원한다. F1팀이 첨단기술을 실험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이런 후원금 때문이다. 10개팀이 스폰서로 부터 받는 후원금은 대략 18억달러(약 2조1600억원)로 추산된다. 이들 팀에게 광고를 주는 메인 스폰서들은 파나소닉(토요타), 필립 모리스(페라리), 웨스트(메르세데스 벤츠), 베네통ㆍ마일드세븐(르노), DHL(조단 혼다) 등이다. 이들은 경주차의 좋은 광고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2000만달러(24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투자하기도 한다.
후원사 중에는 광고 제한을 많이 받는 담배회사의 비중이 높다. 하지만 최근들어 정보통신 업체들의 광고가 이어졌다. 보다폰(페라리), 컴팩(BMW윌리엄스)이 대표적. F1팀과 정보통신 분야에서 협력하면서 동시에 상당한 홍보효과를 누린다.
F1팀 중 가장 후원금을 많이 받는 팀은 페라리. 지난해 20여개 후원사로부터 2500억원을 받았고 특히 메인 스폰서인 필립 모리스(말보로)로 부터는 800억원 정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팀 예산도 페라리, BMW 윌리엄스와 맥라렌일 경우 3억~3억5000만달러(4200억원)안팎이다. BARㆍ르노 등은 2억달러(1300억원)에 육박하고 재규어 등 상대적으로 가난한 팀들도 5000만달러(750억원)를 넘는다.
업체들은 F1에 참가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자사의 브랜드를 ‘일류 상품’ 반열에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엔진ㆍ타이어ㆍ휠 업체들이 수십억명이 지켜보고 기술 향상, 제품 실험, 홍보효과를 두루 얻을 수 있는 행사를 놓칠 리가 없다.
1964년 F1에 진출한 혼다는 이듬해 우승함으로써 세계인들에게 ‘기술이 있는 자동차 회사’라는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줬다. 이후 F1에서 쌓은 기술로 80년대에 정통 스포츠카 ‘NSX’를 내놓아 다시한번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BMW는 지난해 엔진 성능에 관한한 페라리와 메르세데스 벤츠를 눌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1분당 엔진회전수가 19000rpm을 넘었고 최고출력도 페라리를 능가해 ‘BMW엔진은 강력하다’는 이미지를 전세계 자동차 소비자들에게 준 것이다.
◆세계 자동차 기술의 경연장
F1에서 차체를 만들거나 엔진을 공급하는 자동차 업체를 보면 스포츠카로 유명한 페라리, 메르세데스 벤츠, BMW, 르노, 토요타, 혼다, 재규어 등 전세계 내로라하는 업체들이다. 타이어 공급업체로는 브리지스톤과 미쉐린이 있다. 이들에게 F1경기는 전세계를 대상으로한 홍보무대이면서 승부를 가리는 처절한 전쟁터다.
경기 성적이 바로 후원금 액수로 이어지기에 이들은 첨단기술 개발에 전력을 쏟는다. 각 팀(엔진공급 회사)은 해마다 20~50마력씩 출력을 높인 새로운 엔진을 만들어 낸다. BMW는 올해 최고출력이 900마력에 달하는 엔진을 내놓았다. 배기량 1000cc의 출력이 300마력이 되는 셈이다. 내구성 등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지만 국내 2000cc 승용차의 최대출력(업체 발표 기준)은 130~140마력 정도에 그친다.
메르세데스 벤츠와 혼다도 매년 새로운 엔진을 만들어야 하기에 1억~2억달러를 개발비용으로 쓴다. 또 시속 350km이상 고속주행을 가능케하는 차체 디자인(에어로다이내믹)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경주차에 적용해야 한다. 초고속 질주를 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실수라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카본 등 첨단소재를 개발해서 사용한다.
이런 첨단 기술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양산차, 특히 스포츠카에 많이 응용된다. F1에서 수년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페라리는 양산 스포츠카에 세미 AT 트랜스미션을 달았다. 이 반(半) 오토매틱 트랜스미션은 변속레버를 사용하지 않고 핸들(스티어링 휠)에 달린 버튼을 눌러 변속하는 것으로 F1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변속시간을 줄임으로써 동력전달 손실을 최소화한다.
또 BMW의 대표적인 스포츠 쿠페인 M3도 핸들에 달린 버튼으로 변속이 되는 트랜스미션을 일부 차량에 달았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일부 차종에 가벼우면서도 강한 카본 파이버 복합소재를 썼다. F1 경주차에 쓰이는 최첨단 소재다.
◆ 국내업체의 현 주소
F1에서 평가받은 자동차나 자동차 관련 업체는 이 분야의 ‘지존’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국내 자동차 관련 업체는 명함을 내밀지 못하고 있다. 일부 기업이 F3와 랠리 등에 참가하고 있을 뿐이다.
금호타이어는 지난해 F1경기의 ‘등용문’ 성격인 F3(배기량 2000cc)대회에 일본 브리지스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공식타이어로 선정되는 성과를 올렸다. 올해 신설된 유로 F3시리즈에 요코하마, 미쉐린, 던롭 등을 제치고 공식 타이어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로써 금호타이어는 최고 기술을 필요로 하는 레이싱 타이어를 만드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유럽 각국에 심어줬고 판매에 상당한 도움을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소형 차종인 ‘베르나’를 기본으로 만든 ‘액센트 WRC(월드 랠리 챔피언십)’ 경주차량으로 WRC에 참가하고 있다. 푸조, 포드, 미쓰비시, 스바루 등이 각축을 벌이는 WRC는 주로 비포장 도로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자동차 경기다.
WRC에 참가하는 것 자체도 뛰어난 홍보수단이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면 이는 곧바로 판매 신장으로 이어진다. 5년째 참가하고 있는 현대측은 년간 3000만달러 안팎의 홍보 효과를 거두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는 올들어 메인 후원사를 구하지 못해 자금난과 철수설이 나돌고 있다.
이처럼 국내 일부 업체가 F3와 WRC에서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자본과 기술에서 상당한 격차가 있어 F1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 국내 지자체 F1 유치 움직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F1 경기를 유치하려는 지자체의 움직임도 보인다. 국제 F3대회를 창원에서 개최하고 있는 경상남도는 지난달 F1유치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경상남도는 진해신항 준설토 투기장 매립으로 조성될 부지 120만평에 F1경주장(40만평)과 테마파크 등을 조성해 국제적인 관광 명소로 가꾸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