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21 전투기에 탑재되는 F-414 항공엔진의 모습./한화에어로스페이스

내년 양산을 앞둔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에 들어가는 엔진은 미국 제네럴일렉트릭(GE)에 의존하고 있다.국내 항공기 엔진은 대부분 해외에 종속된 상태다. 전 세계에서 항공엔진 기술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과 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5개국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항공기의 심장인 엔진을 국산화하지 않고 우주항공 산업이 발전할 수 어렵다고 본다. 방위사업청이 14년에 걸쳐 3조3000억원이라는 막대한 투자를 결정한 이유다. 방사청은 지난 1월 ‘첨단 항공 엔진 개발 기본계획안’을 심의했다. 전투기 엔진 국산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투자를 공식화한 것이다.

지난 12일 경남 창원시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 제1사업장 엔진시험동에는 우리 해군의 7000t급 이지스 구축함(KDX-Ⅲ)에 들어가는 엔진 LM2500이 시운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LM2500은 GE의 항공 엔진인 CF6에서 파생된 엔진으로 우리 해군 함정 상당수가 이 엔진을 쓴다.

엔진 시운전에 걸리는 기간은 일주일 정도다. 정비 기간은 단위가 다르다. 김종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생산기술팀 부장은 “엔진 정비를 시작하면 보통 1~2년 정도가 걸린다”고 말했다. 시운전에 들어가는 시간에 비해 엔진 정비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엔진 기술과 주요 부품이 해외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경남 창원 제1사업장에서 항공 엔진 'F404'의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한화에어로스페이스

김 부장은 “정비를 위해 엔진이 들어오면 분해를 한 뒤에 부품별로 상태를 점검해서 필요한 부품이나 자재는 발주를 내는데, 새 부품과 자재를 받는데 보통 1년이 걸린다”며 “자재가 들어오면 조립에 한 달, 시운전은 일주일이면 충분한데 해외에서 부품이나 자재를 받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항공기 엔진 국산화의 총대를 멘 것도 이 때문이다. 김 부장은 “전체 정비비의 60~70%가 수입으로 들여오는 자재비인데, 우리가 직접 첨단 엔진을 개발하면 이런 자재비를 크게 아낄 수 있다”며 “엔진을 개발하는 미국의 GE, 프랫앤휘트니(Pratt & Whitney·P&W) 같은 기업과 우리의 실력 차이는 크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그동안 GE와 P&W의 엔진을 제작하면서 적지 않은 노하우를 쌓았다. 자체 항공기 엔진을 갖기 위해 이미 지난 10년 간 약 2조원을 투자했다. 유도무기엔진이나 중고도무인기용 엔진은 이미 국산화를 진행했다. 실제 창원 제1사업장 곳곳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엔진 국산화 노력을 볼 수 있었다.

전 세계 항공엔진 기술 보유 현황./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엔진조립 공장에서는 구축함용 LM2500 엔진과 항공기용 F404, F414 엔진 조립이 한창이었다. F414는 KF-21 전투기에 들어가는 첨단엔진으로 1만4770lbf(파운드 포스·엔진 출력 단위)급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개발에 나선 첨단엔진은 1만6000lbf급이다. F404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제작하는 T-50 고등훈련기에 쓰이는 엔진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F404 구성품 1300여종 가운데 42종을 국산화했다.

공정의 불량률을 줄이기 위해 디지털 조립 절차서도 도입했다. 항공 엔진 제작은 거의가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용접이 불가능한 소재를 쓰는 경우가 많고, 부품이나 자재에 맞춰서 조금씩 형상이 달라질 수 있어서 자동화가 쉽지 않다. 작업의 대부분이 수작업이다 보니 작업절차도 글로 정리된 경우가 많은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자체 투자를 통해 작업 조립 절차서를 3차원(D) 디지털화했다.

글이 아니라 모니터에서 입체 설계도를 보며 조립할 수 있다는 말이다. 김 부장은 “모든 작업 절차를 디지털로 기록해 누락되는 일이 없도록 했다”며 “항공기 엔진은 1년에 많아야 30~40대를 만들기 때문에 자동차 공장처럼 자동화가 쉽지 않은데, 디지털화를 통해 효율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기 엔진에 들어가는 부품을 직접 가공하는 엔진부품신공장도 마찬가지다. 엔진부품신공장에 들어서자 수작업이 대부분이라는 항공기 제작 과정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졌다. 넓은 공장 안에서 사람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원자재를 가공해서 항공기 부품으로 만드는 공정은 이미 상당 부분 자동화가 이뤄진 모습이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엔진부품생산공장에서는 모든 공정이 자동화 및 실시간 관리되고 있다./한화에어로스페이스

공장 안에는 무인운반로봇(AGV)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엔지니어는 곳곳에 설치된 모니터 화면을 통해 밀링과 선반 가공 자동 공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확인했다. 모니터에 빨간 불이 뜨는 공정이 있으면 문제를 확인하고 처리한다. 하지만 공장에 머무르는 30여분 동안 사람이 개입할 만한 상황은 한 번도 없었다.

조운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엔진생산팀 부장은 “원자재가 들어오면 40여 가지 가공 공정을 거쳐서 실제 부품으로 만들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엔진 부품을 가공하는 공장이 이 정도 수준으로 자동화된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회사는 연구 인력에 대한 투자도 늘리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판교 연구센터의 연구 인력을 현재 200명에서 2028년까지 5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해외 연구 인력 유치를 위해 해외 연구센터도 만들고 있다.

김종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첨단엔진사업팀장은 “10년 전부터 다양한 엔진을 직접 개발하고 있고, 전투기 엔진보다 기술 난이도가 낮은 엔진은 국산화에 성공하기도 했다”며 “궁극적으로는 2만4000lbf급 터보팬엔진을 개발해 KF-21 후속기에 탑재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항공엔진 개발 현황과 앞으로의 계획./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항공엔진 개발의 생산유발효과는 68조원이다. 고용유발효과도 10만명에 달한다. 항공엔진 원가의 대부분이 소재나 구성품 가공·제작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수많은 중소·중견기업에도 일거리를 만들 수 있다.

김 팀장은 “5세대급 전투기부터는 관련 기술 수출이 철저하게 통제된다”며 “지금 독자 엔진을 개발하지 않으면 미래에는 항공 산업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항공기 엔진은 한 번 개발하면 함정이나 수송기, 친환경 선박 등 다양한 용도로 파생형 엔진을 개발할 수 있어 경제성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