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호 아이엠지티 대표는 9일 조선비즈와 만나 “집속 초음파는 진단 초음파에 쓰이는 것보다 더 강한 에너지를 인체에 조사(照射)해 열 자극으로 종양이나 환부를 치료하는 데 쓰인다”며 “정밀하고 깊숙이 투과가 가능해, 정상세포의 손상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염현아 기자

췌장암은 소화 효소를 분비하는 췌장에 생기는 암이다. 췌장은 복부 깊숙이 다른 장기들이 둘러싸여 있는 데다 암에 걸려도 증상이 거의 없어 조기 발견과 진단이 어렵다. 이 탓에 췌장암은 전 세계 암 사망률 3위이자, 5년 상대 생존율이 15.8%로 모든 암종 중 가장 낮다.

췌장암 환자 중 수술이 가능한 환자는 5명 중 1명뿐이며, 수술하더라도 2년 내 70~80%는 재발한다. 폴피리녹스(FOLFIRINOX), 젬시타빈(gemcitabine) 등 여러 항암제가 나오긴 했지만, 암세포 주변이 단단하게 굳는 조직 섬유화로 항암제가 암세포 내부까지 도달하기 어렵다.

국내 바이오 기업인 아이엠지티(IMGT)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했다. 약물이 혈관과 암세포 벽을 통과해 암세포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돕는 집속(集束·한 군데로 모이는 것) 초음파 의료기기 ‘IMD10′이다.

9일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 내 사옥에서 만난 손건호 아이엠지티 대표는 “집속 초음파는 진단 초음파에 쓰이는 것보다 더 강한 에너지를 인체에 조사(照射)해 열 자극으로 종양이나 환부를 치료하는 데 쓰인다”며 “정밀하고 깊숙이 투과가 가능해, 정상세포의 손상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IMD10의 약물 전달 원리를 설명한 그림./아이엠지티

◇집속 초음파로 항암제 침투 길 열어

아이엠지티는 2010년 이학종 서울대 의대 교수가 창업한 바이오 기업으로, 2023년 7월 코넥스에 상장됐다. 경북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메디슨 연구소, 지멘스 코리아 등 의료기기 회사에서 20년 가까이 초음파 기기를 연구한 손건호 대표가 2020년 합류해 이학종 대표와 각자 대표를 맡고 있다.

손 대표는 “초음파 진단기기는 미국 필립스, 독일 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어 진단보다 치료로 확장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며 “그러던 차에 관련 학회에서 알고 지내던 이학종 교수가 초음파를 이용한 약물 전달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어 관심 갖게 됐다”고 말했다.

IMD10의 핵심 기술은 집속 초음파이다. 항암제를 정맥으로 투여할 때 IMD10을 병용하면, 집속 초음파가 암세포 주변 조직에 미세한 구멍을 만든다. 약물이 세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또 초음파가 조직에 미세한 진동을 일으켜 세포막을 일시적으로 느슨하게 만들면, 약물이 더 쉽게 침투할 수 있다.

회사는 2022년 국내 췌장암 환자 30명을 대상으로 표준항암제 폴피리녹스와 IMD10를 병용하는 탐색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중간 분석 결과, 폴피리녹스 단독 요법 대비 위험비율(HR)은 0.41, 전체생존기간 중앙값(mOS)은 중간 결과 발표일 기준 5.1개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HR은 항암치료에서 생존율 측정에 사용되는 지표로, 수치가 낮을수록 사망 위험률이 감소한다는 뜻이다. 글로벌 항암제의 HR은 0.7 내외로 알려져 있다.

IMD10은 기존 항암치료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 접근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초음파로 항암제 전달을 돕는 의료기기는 현재까지 상용화된 게 없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지난 2월 IMD10을 혁신의료기기(BDD)로 지정했다. 국내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범부처사업단)은 2025년 10대 대표 과제로 선정했다.

손 대표는 “IMD10은 시장에 없는 새로운 기술로, 2020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많은 난관이 있었다”며 “범부처사업단이 임상시험, 인허가 등 관련 자문을 세세히 신경을 써준 덕분에 확증 임상시험 단계까지 왔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아이엠지티 이학종·손건호 대표와 직원./아이엠지티

◇하반기 확증임상 착수…韓·美 동시 진행

아이엠지티는 현재 한국과 미국 동시 허가를 위한 마지막 절차인 확증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임상시험계획(IDE) 서류 작업을 마치고 하반기 중에 식품의약품안전처와 FDA에 제출할 예정이다.

손 대표는 “이번 확증 임상시험은 한국과 미국의 췌장암 2·3기 환자 300명을 대상으로 3년 정도 진행할 계획”이라며 “미국은 하버드 의대 암전문 병원인 다나파버를 포함한 2곳, 한국은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에서 각각 진행한다”고 말했다.

회사는 IMD10의 확증 임상시험에 성공하면 한국과 미국 시장 상용화는 물론, 제품군 확대를 위한 연구개발(R&D), 기술 수출 등 글로벌 진출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손 대표는 회사가 IMD10의 첫 표적을 췌장암으로 설정한 건 가장 치명적이고 어려운 암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췌장암에서 성과를 내면 다른 암으로 치료 대상을 쉽게 확장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회사는 난치성 암 중에서도 부위를 가리지 않고 온몸에 생기는 육종암과 췌장 근처에 있는 담관암을 다음 치료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 외에도 만성 통증 치료를 위한 탐색 임상시험도 진행 중이며, 뇌신경질환 치료용 초음파 기기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