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태백의 폐광산이 달 자원을 채취하는 우주 기술 개발의 요람으로 거듭난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들이 달 자원 탐사 시대를 대비해 신기술들을 실증하기 위해 폐광산에 ‘우주자원융합실증단지’를 세운다.
지난 28일 오후 강원도 태백시 태백체험공원의 함태광업 폐갱도. 때늦은 눈보라가 치는 궂은 날씨에도 100여명이 폐갱도에 모였다. 이날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태백시가 개최한 폐광 내 달 현지자원 실증 시연 설명회가 열렸다. 이평구 지질자원연 원장과 이상호 태백시장, 방효충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를 비롯해 여러 출연연 연구자와 태백시 관계자, 국내외 우주기업 관계자들이 좁은 갱도를 가득 메웠다.
마이크를 잡은 김경자 지질자원연 우주자원개발센터장은 “달에는 풍부한 미래 자원이 묻혀 있으며 경제적 가치는 56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번 사업은 태백시와 함께 폐광산을 달과 유사한 환경으로 만들어서 여러 출연연이 개발하는 자원 채취 기술을 테스트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지질자원연은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함께 ‘K-달 현지자원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여러 출연연이 벽을 허물고 공동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대규모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하는 ‘글로벌 TOP 전략연구단’ 사업에도 신청했다. 현재 사업 선정을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날 시연회에는 지질자원연을 비롯해 여러 출연연과 국내 우주 기업들이 개발 중인 달 자원 채취 기술들이 대거 등장했다. 지질자원연은 달 표토층 자원추출기를 선보였다. 이 장비는 달의 표토(레골리스)에서 물이나 산소, 휘발성 기체를 추출하는 장비다. 미국의 달 자원 개발 기업인 오프월드(OffWorld)가 2029년 실제로 달에 보낼 장비이기도 하다.
김경자 센터장은 “로버(이동형 탐사로봇)가 채취한 토양을 장비에 투입하면 가열해 산소, 수소, 물 같은 물질을 추출하고 분리하는 장비”라며 “2029년 달의 남극에 보내기 전에 태백에서 실증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달 표면을 탐사하고 드릴로 토양을 채취하는 로버도 공개됐다. 지질자원연이 개발한 레이저 유도 파쇄 분광기가 이 로버에 실린다. 달 궤도선인 다누리에 실린 감마선분광기와 같은 장비다. 김 센터장은 “로버가 달 표면을 이동하면서 분광기에 실린 센서를 통해 50종 이상의 원소를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다”며 “달 표면과 유사한 지형을 모사해 지상에서 실증하는 것이 중요한데, 태백에 구축할 실증단지가 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전기연구원이 개발하고 있는 달 표면 무선 송전시스템도 시연회에 나왔다. 무선 송전시스템은 달에서 전기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달 기지도 전력 인프라가 필요하지만, 지구에서 쓰이는 전력 케이블은 높은 비용 탓에 달에서 쓰기가 어렵다. 전기연은 근거리는 직류 배전, 장거리는 무선 송전을 통해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태백 실증단지에 설치되는 여러 자원 개발 장치는 전기연의 무선송전 시스템을 통해 전력을 공급받을 예정이다.
방효충 KAIST 교수 연구팀은 달 표면 자원 탐사용 초저궤도 큐브샛을 공개했다. 달 표면에 가까운 초저궤도를 돌면서 자원탐사 임무를 수행할 미니 위성이다. 방 교수는 “달 표면으로부터 10~50㎞ 고도의 초저궤도 비행을 통해 탐사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우주 방사선 측정기, 로켓 연료(메탄) 생산장치, 히트파이프 방식 원자로 등이 실증단지에 들어선다.
지질자원연은 여러 자원 개발 장비들을 하나의 기지형 플랫폼 형태로 융합해 지속적인 연구와 실험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 5월부터 실험동 구축에 착수하고, 내년부터는 폐광산 지하 공간과 지상 공간을 활용한 옥외실험부지 구축에도 나선다. 장기적으로는 이렇게 개발한 기술을 민간 기업에 이전하는 우주자원산업단지도 조성할 계획이다.
김경자 센터장은 “폐광을 재활용해 우주 자원 개발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이번 시연은 단순히 기술적 진전을 넘어서 새로운 우주 산업의 미래를 여는 전환점을 의미한다”며 “국내외 기관들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우주자원 개발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상호 태백시장은 “지하 연구시설은 침체한 지역경제에 큰 활력을 불어넣고 나아가 첨단 연구 도시, 청정에너지 도시로 도약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연구자들이 태백에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도록 지자체 차원에서 인허가 문제와 예산 등을 마음껏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