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가 신약 개발 임상 시험도 맡아 하는 임상시험수탁(CRO) 사업에 진출한다. 지금까지는 고객사에서 바이오 의약품 주문을 받아 만드는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에 주력했는데, 임상 시험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임상시험수탁 사업을 위해 초소형 인공 장기(臟器)로 신약 후보 물질 등을 테스트하는 ‘삼성 오가노이드’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16일 밝혔다. 오가노이드(organoid)는 장기를 뜻하는 ‘organ’에 비슷하다는 의미를 지닌 ‘-oid’를 더한 말로, 주로 사람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든다.
◇동물실험 대체할 오가노이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오가노이드 사업 분야 중 우선 ‘암 환자 유래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항암 신약 후보 물질 발굴을 돕는다는 계획이다. 암 환자 세포를 배양해 만든 오가노이드에 신약 후보 물질을 투입해 효능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신약 개발 고객사와 후보 물질 발굴 단계부터 협업하면서 록인(lock-in·자물쇠처럼 소비자를 묶어두는 전략) 효과를 거둔다는 구상”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CDMO 기업 중 세계 1위인 론자(스위스), 5위 우시바이오로직스(중국)는 임상시험수탁 사업도 함께 하고 있다. 회사는 오가노이드 사업을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고 암 전문 병원으로 선정된 삼성서울병원과 협업한다는 계획이다.
시장조사 기관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환자 유래 오가노이드 시장 규모는 2024년 10억달러(약 1조3600억원)에서 2030년 33억달러로 연평균 22% 성장할 전망이다.
FDA(미 식품의약국)가 임상 시험 첫 단계로 요구하던 동물실험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한 것도 ‘삼성 오가노이드’ 출범 배경으로 꼽힌다. 지난 4월 FDA는 “오가노이드로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오가노이드를 동물실험의 대체 기술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오가노이드 시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으로 2억마리 이상 동물이 신약 실험 등에 쓰여 동물 애호가들의 비난이 커지는 가운데, 오가노이드는 동물실험보다 시간이 적게 들고 윤리적 문제에서도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또 인간 세포를 장기처럼 자라도록 키우는 방식이어서 사람 몸속 환경을 더 유사하게 구현할 수 있다. 오가노이드가 동물실험보다 약물에 대한 인체 반응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이유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은 이전부터 오가노이드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스위스 제약사 로슈는 2023년 ‘인체 생물학 연구소(IHB)’를 설립하고 오가노이드를 기반으로 한 신약 물질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도 신약 후보 물질 개발과 독성 평가 등에 오가노이드를 활용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오가노이드와 인공지능(AI) 분석 플랫폼을 도입한 이후 임상 1상 실패율이 급감했다”고 밝혔다.
◇AI 활용한 임상 시험도 주목
FDA가 동물실험의 단계적 폐지를 밝히면서 주목받는 또 다른 분야는 AI를 활용한 임상 시험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할 수 있어 약물의 효능과 독성을 예측하는 데 기존 방식보다 탁월한 성능을 보인다. 신약 후보 물질을 효율적으로 선별해 낼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도 AI 기반 임상 시험 기술 등을 보유한 회사들이 있다. 신테카바이오가 자체 개발한 AI 플랫폼 딥매처는 신약 후보 물질 발굴과 흡수, 분포, 대사, 배설, 독성 등 예측이 가능하다. 온코크로스의 AI 신약 플랫폼 ‘랩터AI’는 국내 대형 제약사들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매출을 내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는 보고서를 통해 “FDA의 새로운 방침은 동물실험을 줄이고 연구·개발 비용을 낮춰 의약품 가격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며 “동물실험을 대체할 새로운 임상 시험 방법들이 앞으로도 개발될 전망”이라고 했다.
☞오가노이드
장기(臟器)를 뜻하는 단어 ‘organ’에 ‘~와 비슷하다’는 뜻의 ‘-oid’를 더한 합성어. 주로 사람의 줄기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해 만든 ‘초소형 인공 장기’를 일컫는다. 각종 질병 연구, 신약 개발, 개인 맞춤형 치료 등에 활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