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주던 세균이 약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위염과 위궤양, 위암의 원인으로 잘 알려진 세균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 제2형 당뇨병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를 포함한 국제 연구진은 헬리코박터균이 분비하는 단백질 ‘CagA’가 아밀로이드 형성을 막는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12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
단백질이 잘못 접히고 서로 엉키면 비정상적인 덩어리인 아밀로이드를 형성할 수 있다. 이 덩어리가 신경세포에 쌓이면 뇌 기능에 치명적인 손상을 일으키고,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당뇨병 같은 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에 병을 주는 아밀로이드지만, 세균에게는 보호막인 세균막(biofilm)의 주 성분이기도 하다. 세균막은 항생제나 외부 공격으로부터 세균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헬리코박터가 분비하는 CagA 단백질이 세균막 형성을 방해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대장균과 녹농균으로 실험한 결과, CagA 단백질은 세균의 단백질들이 제대로 뭉치지 못하게 해 세균막 형성을 막았다.
연구진은 CagA를 이용하면 질병을 일으키는 아밀로이드를 막을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 CagA는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타우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파킨슨병 관련 단백질인 알파 시누클레인, 제2형 당뇨병과 연관된 아밀린의 응집을 모두 억제했다. 기존에는 CagA가 암을 유발하는 독성 단백질로만 알려졌지만,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의 비정상적인 뭉침도 막을 수 있다는 새로운 역할이 확인된 것이다.
CagA의 억제 효과는 아주 낮은 농도에서도 강하게 나타났다. 다만 어떤 단백질에 작용하느냐에 따라 억제 작용이 나타나는 시점이 달랐다. CagA는 아밀로이드 베타에서는 초기 핵 생성 단계, 알파 시누클레인에서는 성장 단계에 작용해 응집을 막았다.
연구진은 CagA의 구조를 분석해 아밀로이드 억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 부위를 찾았다. 그리고 이 부분만 따로 떼어내 사용해도 여전히 아밀로이드 생성을 막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는 향후 약물 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
연구를 이끈 젠 진(Zhen Jin) 카롤린스카 연구소 연구원은 “헬리코박터균이 위장 질환뿐 아니라 신경계, 대사 질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CagA 단백질은 단백질이 잘못 접히며 생기는 질환을 치료할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5),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s7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