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물을 한껏 머금은 붓으로 한자 ‘二(이)’를 너무 강하게 눌러쓴 것일까. 아니면 오른쪽 눈을 살포시 감고 있는 아이돌 스타의 얼굴 일부일까. 언뜻 보기에 대가의 수묵화를 흉내 낸 듯한 이 사진은 약 50년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였던 화성 표면 줄무늬 중 일부다.
이 사진은 유럽우주국(ESA) 위성이 고해상도로 최근 촬영한 것이지만, 앞서 1970년대 미 항공우주국(NASA) 화성 탐사선 ‘바이킹’이 찍은 사진들을 통해 ‘미스터리 줄무늬’가 인류에 처음 포착됐다. 주변 지형보다 어둡고, 경사진 지형을 따라 수백m 뻗은 줄무늬들의 정체를 밝혀내려는 연구자들의 시도가 수십 년간 잇따랐다. 이 가운데 화성의 정체불명 줄무늬가 물길에서 유래했다는 추정이 관심을 모았다. 화성의 얼음 또는 극도로 습한 대기에서 유래한 소량의 물이 흐른 흔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화성의 생명체 존재에 관한 관심과 맞물리면서 주목받았다.
이를 반박하는 연구 결과가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됐다. 미국 브라운대와 스위스 베른대 등 공동 연구진은 화성의 절벽과 분화구 등을 따라 뻗은 미지의 줄무늬들을 인공지능(AI)으로 분석했다. 연구진은 고해상도 위성 사진 8만6000여 장을 입력해 줄무늬 50만개 이상을 담은 화성 표면 지도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화성 줄무늬는 액체 흐름과는 관련 없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연구진은 줄무늬가 가파른 경사면에서 먼지층이 액체처럼 미끄러져 내려오며 생긴 흔적이라고 보고 있다. 모래시계에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먼지가 흐르며 붓글씨 같은 패턴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화성에도 물이 있다는 증거’라며 일각에서 키워온 기대가 이번 연구 결과로 깨진 셈이다. 그럼에도 미스터리 줄무늬를 화성이 인류에 보내는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어서 오라’는 의미를 담은 캘리그래피(예술적으로 쓴 손글씨)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상상대로 화성 생명체가 지구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줄무늬에 담았다면, 그 뜻은 ‘속았지?’였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