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항공청이 개청한 작년 5월 27일 오전 경남 사천시 사남면 우주항공청 임시청사로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뉴스1

서울에 있는 우주 스타트업의 A팀장은 얼마 전 업무 협의를 위해 경남 사천의 우주항공청을 방문했다. 오후 회의 시간에 맞추기 위해 집을 나와 40분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해 오전 8시 23분에 출발하는 진주행 KTX 기차를 탔다. 진주역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한 뒤, 우주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1시간 남짓 회의를 하고 서둘러 진주역으로 향했다. 오후 3시 42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지 않으면 다음 기차가 2시간 뒤에나 있기 때문이다. 오후 3시 42분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 20분.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해 시계를 보자 오후 8시가 지나 있었다. 1시간 회의를 위해 12시간을 길에서 보낸 셈이다.

우주항공청이 경남 사천에 문을 연 지 1년이 됐지만 여전히 사천시 사남면의 아론비행선박산업 건물을 임시청사로 쓰고 있다. 정식 청사는 이제 겨우 입지를 정했을 뿐이다. 지난 21일 방문한 임시청사 주변에는 공터만 있고 다른 건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개청 1년이 됐지만 개청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모습이었다.

우주청 직원들과 우주항공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지금의 입지가 우주청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업무 효율을 낮춘다고 지적했다. 우주청을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도 문제지만 그보다 심각한 것은 전문가를 유치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우주청 안팎에서는 우주청 입지를 경남 사천으로 결정한 윤석열 정부가 문을 닫으면서 입지를 포함해 우주청 거버넌스(정책집행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김병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이 2022년 4월 28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전·세종 지역공약 대국민 국민보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스1

◇교통 불편보다 인력 확보가 더 문제

우주청 입지로 경남 사천을 택한 건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다.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위는 2022년 4월 우주청 경남 설립을 발표하면서 “지역 균형발전 차원”이라고 밝혔다. 방위사업청 대전 이전 공약과 맞물려 경남에는 우주청을 배려했다는 말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당시 결정이 우주청의 발목을 잡았다고 지적했다.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우주공공팀장은 “입지 자체의 한계가 예상은 됐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어려운 것 같다”며 “사천에서 회의를 하려면 거의 하루를 다 비워야 하다 보니 사람을 모으는 것부터 불편하다”고 말했다.

우주 관련 정부 연구소의 한 간부는 “미국은 의회와 백악관 반경 몇㎞ 안에 모든 정부 부처나 관계 기관이 다 있고, 미 항공우주국(NASA) 본부도 마찬가지”라며 “세종시도 처음 같은 문제가 있었는데 사천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인력이 문제였다. 우주청이 정식 개청 전부터 업무에 돌입했지만 이달 초에야 정원(294명)을 겨우 맞출 수 있었다. 이른바 ‘연구자 남방한계선’이 대전에서 판교까지 올라갔다는데 서울에서 4시간이 걸리는 곳에서 인력 확보가 쉽지 않았다. 우주청 직원 면접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5급 선임연구원 채용인데 지원자 대부분이 이제 막 대학을 졸업했거나 다니던 회사의 정년 퇴직을 앞둔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우주청은 오는 27일 개청 1주년 행사도 사천과 경기도 과천에서 이원화해서 진행한다. 우주항공의 날 기념식은 사천 우주청 임시청사에서 열고, 우주항공 주간 선포식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연다. 이 역시 입지 고민이 빚은 결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남 사천의 사천공항 전경. 김포행 비행기는 하루 2편만 운항한다./조선비즈

교통 여건도 개선되지 않았다. 개청 1년이 되도록 비행기나 KTX 열차 증편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현재 김포공항과 사천공항을 연결하는 항공편은 하루 2회만 운영 중이다. 오전에 한 편, 오후에 한 편이다 보니 모든 업무를 비행기 시간에 맞추는 형편이다.

한 우주청 간부는 “보통 국회에서 열리는 회의가 오후 1시쯤 시작하는데, 사천공항에서 서울로 가는 오전 비행기를 타면 오후 1시가 넘어서 김포공항에 도착하기 때문에 제때 참석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오후 1시 회의가 잡히면 아예 전날 서울로 가서 1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간 기업에서 일하다 우주청으로 이직한 한 30대 직원은 “그래도 항공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니 항공편 증편은 어렵지 않게 이뤄질지 알았는데,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어서 당황했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정부 교체에 우주청 앞날도 불투명

윤석열 정부가 조기에 문을 닫으면서 우주청의 앞날도 불투명해졌다. 우주청이 윤석열 정부의 대표 사업이었던 만큼 새 정부가 들어서면 개편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무직인 청장의 교체 가능성부터 우주청의 여러 대표 사업들에 대한 조정 가능성도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과학기술 분야 공약을 맡고 있는 황정아 의원은 지난해 우주청 연구개발본부를 대전에 신설하자는 법안을 내기도 했다. 당시 이 법안에는 우주청과 행정안전부 등 여러 정부부처가 반대했다.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우주청이 사실상 둘로 쪼개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우주청은 여전히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임무본부를 비롯한 일부 조직은 대전으로 옮기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우주청 직원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 직원들의 의견을 들어본 뒤에 정식으로 거버넌스 개편을 건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작년 5월 27일 오전 경남 사천시 사남면 우주항공청 임시청사로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뉴스1

전문가들은 우주청의 조직 구성은 그대로 두되 상위 거버넌스에 변화를 줘서 정책 역량을 키우자고 제안했다. 안형준 팀장은 “새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그동안 해온 정책들은 큰 변화 없이 이어갔으면 좋겠다”며 “지금의 우주청은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가우주위원회를 지원하는 상설 조직을 만들거나 우주 담당 비서관 자리를 신설하는 변화가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기영 인하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우주항공은 국방부, 국토교통부, 산자부, 과기정통부 등 여러 부처에 수요가 있는 분야”라며 “여러 부처의 수요와 기술개발을 연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콘트롤 타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