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이 인공지능(AI)으로 설계한 합성 DNA로 동물 세포 속 유전자를 조절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AI가 설계한 DNA로 세포에 명령을 내려 질병을 치료하는 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스페인의 유전체조절연구소(CRG) 연구팀은 생성형 AI로 합성한 DNA 조각(단편)을 주입해 포유류 세포에서 유전자 발현을 제어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고 국제 학술지 셀에 지난 8일 밝혔다.
연구팀은 5년에 걸쳐 6만4000개가 넘는 DNA 조각을 다양한 조합으로 설계한 다음 실험실에서 합성했다. 이렇게 생성한 DNA 조각이 어떤 유전자를 활성화하거나 비활성화하는지 등을 확인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구축했고, 이를 AI에 학습시켰다. 유전자 활성을 담당해 ‘인핸서(enhancer)’로 불리는 DNA 조각을 AI로 설계하는 체계를 갖춘 것이다.
연구팀은 AI에 ‘이런 조건에서 유전자가 켜지도록 하는 인핸서를 설계해줘’라고 요구했고, AI가 설계한 DNA 조각을 화학적으로 합성했다. 이를 바이러스에 삽입한 뒤 쥐 혈액세포에 주입했고, AI 설계대로 특정 유전자가 활성화되거나 비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AI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DNA 조각을 설계해 포유류 세포의 유전자를 조절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연구팀은 “소프트웨어로 컴퓨터를 작동하듯 AI가 세포 내 유전자 발현을 제어하는 ‘명령어’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은 생명공학의 본질적 변화를 의미한다”며 “향후 암, 희소병, 면역 질환 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연구는 DNA를 잘라내고 교체하는 방식의 유전자 가위 기술과 달리, 기존 유전자는 그대로 둔 채 조절용 DNA 조각을 별도로 추가해 유전자의 작동을 조절하는 기술이다. 조명 스위치를 달아 빛의 밝기를 조절하듯 세포 내 유전자 활동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뜻이다.